산업혁명
산업혁명하면 떠오르는 것이 증기 기관차이지요. 산업혁명의 움직임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은 저 거대한 힘....
와 트는 주전자 안의 물이 끓을 때 뚜껑이 덜컹거리는 것을 보며 증기의 힘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장성한 후, 기계 기술자가 되어 글래스고 공과 대학에서 기계 수리점을 차려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탄광에 고인 물을 퍼내는 뉴커먼의 증기 동력 장치를 보게 되는데 뉴커먼의 동력 장치는 많은 석탄을 태워도 열이 밖으로 새어나갔기 때문에 연료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힘이 약하고 고장이 잦았다. 그는 뉴커먼의 증기 동력 장치보다 더 완벽한 것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그는 운이 좋게 볼턴이라는 후원자를 만났고, 볼턴의 친구 윌킨슨이 ‘속뚫이 선반’을 만들어 내어 실린더를 정확하게 깎아낼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그는 뉴커먼의 증기 기관에 들어가는 석탄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연료로 증기기관을 움직였고, 피스톤의 왕복 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어 세계의 모든 기계를 증기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동력 장치로 인해 산업 혁명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제임스 와트)
산 업 혁명이란 말 그대로 산업(생산)에 있어 큰 변혁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바로 집안에서 만들어야 했던 물건들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와트의 동력과 함께 산업에 필요한 각종 기계의 발명이었다. 1733년 존 케이는 ‘나는 북’을 발명하였고, 1764년 하그리브스는 제니 방적기(섬유로 실을 만드는 기계)를, 1768년에는 아크라이트가 수력 방적기를 발명했다. 1769년에는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했고, 1779년에는 크롬프턴이 뮬 방적기를 만들었다. 1785년에는 카트라이트가 역직기(동력을 이용한 베틀), 1807년에는 풀턴이 증기선(증기의 힘으로 가는 배),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만들었다.
발 명된 기계들이 섬유 공업과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산업혁명이 섬유분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즉, 면직물 산업이 산업혁명의 출발 주자였던 것이다. 면직물공업은 와트가 발명한 증기 기관을 사용하면서부터 더욱 발전하였다.
그럼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났던 것일까?
첫째, 영국은 활발한 식민지 개척으로 많은 자원과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영국에는 노동력이 풍부했다.
셋째, 명예 혁명 이후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었다.
산 업혁명은 교통과 통신 기관의 대 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만들고 난 후 상품의 수송이 빨라져 산업 발달이 촉진되었다. 1829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차 로켓 호는 시속 약 46km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마차의 속도보다 빨라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증기 기관차는 면직물 공업단지와 석탄 산지를 효과적으로 연결하여 영국의 섬유 공업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켓 호의 성공은 철도 붐으로 이어져 영국은 1838년에 총 805km이던 철도 길이가 12년 후인 1850년에는 2575km, 1870년에는 24945km에 이르렀고, 10년 후인 1880년에는 유럽 각 지역이 거미줄처럼 철도로 연결되었다.
영 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주변국에도 영향을 끼쳐 다른 나라들도 산업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19세기 전반에는 프랑스, 벨기에, 미국 등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유럽 전역이 산업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미국의 벨이 전화,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무선 전신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제점도 산업의 발달만큼이나 컸다.
(벨이 전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만들었겠지.)
수공업자들의 추락이었다. 수공업자들은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싸웠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러다이트( Luddite) 운동이다.
자 신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던 수공업자들에게 산업혁명은 재앙이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값싼 제품이 나오면서 실업자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고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기계로 인해 살 터를 잃고 비참한 노동자로 전락한 이들은 집단을 이루어 공장을 찾아다니며 섬유기계를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1811년 말경 노팅엄 근처에서 시작되어 이듬해에 요크셔, 랭카셔, 더비셔, 레스터셔 등으로 퍼졌다. '러다이트' 즉 '러드'들은 보통 밤에 가면을 쓰고 움직였다.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도자는 러드 왕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아마 전설적 인물인 네드 러드를 본뜬 것 같다. 이들은 사람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므로 종종 지원을 받기도 했다. 1812년 러다이트들에게서 위협을 받고 있던 호스폴이라는 고용주는 한무리의 러다이트들을 사살시켰는데 그는 나중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영국 내각은 러다이트들을 혹독하게 진압했으며 1813년 요크에서 열린 집단재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교수형을 받거나 유배되었다.
산 업 혁명은 1차 산업 위주의 구조를 2차, 3차 산업의 구조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도시의 인구를 증가시켰는데 인구가 거의 없던 맨체스터인 경우 1870년에는 약 50만 명의 인구를 갖게 되었다. 제품의 대량 생산으로 인간의 물질 생활이 풍요로워지자 재산과 교양을 갖춘 중산 계급이 출현했으며, 이들은 의무감과 권리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근대 시민 의식이 확산 되었다.
그 러나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 환경이 악화되었다.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남성, 여성, 아동,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 시달렸다. 기계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많이 생겼는데 만약 손발이 잘리면 전혀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해고되었고, 빈민 수용 시설에 들어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살아야 했다.
또한 도시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택이 모자라고 위생시설도 부족하였다. 따라서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유행했으며, 도시 빈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또 도시마다 빈민가(슬럼)가 발생하여, 도시는 빈곤과 범죄의 대명사가 되었다.
저 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이 단축되었고, 임금이 적은 여성과 아동들을 부분별하게 받아들여 일을 시켰는데 하루에 12시간~ 20시간의 노동을 시키고도 하루하루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의 비참한 임금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대립이 일어났다.(노사 대립) 노동자들은 악독한 고용주들에 대항하여, 보다 나은 임금과 작업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뭉치기 시작하였다. 즉, 조합을 만들어 대항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부의 철저한 탄압이었다. 고용주들에게 대항한 이들은 곧바로 해고를 당하고 감옥에 가서 속절없는 인생을 보내야 했다.
독 일의 철학자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이 만들어놓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게 된다. 그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삶을 빼앗는 악독한 경제 체제라고 보고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게 된다. 한 사람(자본가)에게 치우치는 경제적 이득을 사회라는 이름으로 공동으로 생산하여 공동으로 소유하며 공동으로 분배하자는 이론을 주창하게 되었다. 1844년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파리에서 사회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다가옴을 역설했고, 1848년에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노동자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 사회주의 사상은 20세기 러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고, 결국 레닌이 혁명을 일으켜 1917년, 러시아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어 쨌든 산업혁명으로 인한 영국 사회의 폐단을 정부도 인식을 했는지 영국 정부는 복지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1880년 정부는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10세 이하의 아동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미 관습처럼 되어버린 아동학대가 쉽게 개선될 리 없었다.
산 업혁명은 우리 역사를 변혁시킨 위대한 혁명이라는 것에 토를 달고 싶지 않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도 결국은 산업 혁명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민주적으로 변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 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을 느껴본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준 물질적 풍요 속에 살면서도 미래에 대해 느껴지는 한없는 두려움은 무엇 때문인가! 왜 나는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
(지금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혁명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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