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로 개척과 유럽 세계의 확대
십 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세계와의 무역이 부활되면서 향신료(인도가 주생산지)와 비단(중국이 주생산지) 등 동양의 산물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유럽인들은 동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향신료에 주목했습니다. 육식을 주로 하던 그들은 누린내를 없애주며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후추와 계피를 얻지 못해 안달이 났지요. 수요는 많은데 이슬람 세계로부터 간접적으로 이런 것들을 얻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죠. 따라서 무역을 하는 베네치아 상인들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젤란 일행이 단 한 척의 배에 싣고 온 향신료만으로도 네 척의 손실을 보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인들은 향신료를 통해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그들은 인도와 중국으로 직접 가고 싶어 합니다. 이미 마르코폴로는 동양에 대한 호기심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동방견문록’이란 책을 써서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 런데 15세기 무렵 오스만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상인들은 지중해를 통하지 않고 동방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침반을 항해에 이용하게 되어 모험적 상인들은 국왕의 후원을 받아 먼 바다까지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 항로 개척에 앞장 선 나라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였습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달하였지요. 아프리카 희망봉은 처음엔 ‘폭풍의 갑’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풍이 심해 이 곳을 지나 인도로 가는 길은 생명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스코 다 가마 후, 많은 나라에서 이 곳을 돌아 인도로 향하게 되었고, 에스파냐의 왕 주앙 2세는 ‘좋은 희망의 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보다 약간 앞서서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을 믿고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여 오늘날의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습니다.(1492년)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배 세척을 지원 받아 1942년 8월에 출항하여 같은 해 10월 현재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도착해 이 곳을 산살바도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콜럼버스는 그 후 3차례나 이 곳을 탐험했지만 신대륙이란 것을 알지 못하고, 인도라고 믿고 있어 이 곳에 있는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 지만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브라질 동부해안을 여러 차례 탐험한 끝에 새로운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후 독일의 지리학자인 뮐러가 1507년 간행한 세계 지도의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긴 육지를 하나 그려 넣고 이를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마젤란 일행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여 최초의 세계 일주를 하게 되었으며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신항로 개척으로 세계는 단절을 깨고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 의해 개척된 항로이기 때문에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고, 유럽인들의 착취와 만행을 고스란히 당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 기서 유럽인들은 침략자인가 탐험가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마젤란 일행이 필리핀에 상륙하여 원주민과 벌인 전투를 보는 시각도 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정반대인 것이지요. 미국에서 세운 마젤란 기념비는 최초로 세계 일주에서 성공하였다는 데에 의미를 두었지만 필리핀에서 세운 라프라프 기념비는 침략자인 마젤란 일행을 격퇴시킨 라프라프의 공을 기린 것입니다.
어 쨌든 신항로의 개척은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무역활동은 주로 대서양을 통해 이루어졌고, 동방에서는 향신료, 비단, 차, 면직물 등이 들어왔습니다. 신대륙에서는 담배, 감자, 옥수수 등이 전래되었고, 금, 은 등 귀금속이 대량으로 들어와 유럽의 물가가 크게 뛰었습니다. 이것을 ‘가격혁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에스파냐는 중. 남 아메리카에서 대규모의 금광과 은광을 채굴하여 1520년부터 1608년까지 유입된 은은 18,000톤이나 되었으며, 금도 200톤이 넘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화폐는 금화나 은화였는데 이로써 화폐 가치가 떨어져 100년 동안 물가가 2~4배 가량이 상승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물가상승은 노동자나 지주들에게는 불리했으나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에게는 유리하여 이들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항로의 개척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시장이 생겨 상업이 발전하고, 주식회사와 같은 근대적인 기업이 새롭게 나타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을 ‘상업혁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갔죠. 그동안은 밀밖에 몰랐던 유럽인의 생활이 풍성해
졌죠. 그 후 우리나라에까지 온 옥수수랍니다. 지금은 에탄올생산 원료로 쓰이고 있지요.
지금까지 세계에 전해져 주요 식량이 되어 왔고, 앞으로는
대체에너지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될 옥수수...... 옥수수대가 버려질 때마나 마음이 아픕
니다. 모두가 에너지인데.... 에너지를 버리면서 에너지를 걱정하는 아이러니~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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