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
중 세 도시의 발전은 서양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도시가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니까요. 도시의 출현으로 시민 계급이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으며, 시민의 자유 의식은 사회 변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도시는 크게 3기로 나누어집니다.
제 1기는 8세기부터 10세기 말까지로 중세 초기를 말합니다. 이 당시 도시는 봉건 영주의 성 외곽이나 교회나 수도원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초기에 봉건 영주들은 성 주변에 상공인들이 도시를 형성하는 것을 반겼습니다. 그 이유는 시장세, 상품세 등을 거두어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주민들도 영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영주들의 속박을 견디어냈고, 봉건적인 의무를 다 했습니다. 교회나 수도원에 예속되어 있는 도시민들도 다른 도시 상공업자들이 영주에게 세금을 내듯 교회나 수도원에 지대나 상품세를 내야 했습니다.
가 끔 상인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영주나 교회는 재판권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주어 이익을챙겼으며, 각종 인가를 통해서도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세 초기의 도시는 원격지 상인에 의해 열리는 세시나 인근 주민들과 물자 교환을 하는 주시 수준이었습니다. 농업의 생산이 늘면서 이를 교환하기 위해 시장이 선 것이지요.
제 2기는 11세기에서 13세기 말로 중세 중기를 말합니다. 이 때, 전 유럽을 통해 인구 증가가 현저하고 이른바 ‘상업부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상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상인들은 이제 동양으로 진출까지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에 많은 상인들이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 때의 도시는 제 1기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을 했으며 봉건 영주나 교회의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납니다. 그리고 결국엔 국왕으로부터 도시 자치권(스스로 다르릴 수 있는 권리)을 획득하게 됩니다.
다음은 영국 왕으로부터 얻은 브리스톨 시의 특허장입니다.
‘나 는 브리스톨 시민들에게 잉글랜드, 노르망디, 웨일즈의 전 지역에 걸쳐 그들 자신과 그들이 상품을 가지고 여행할 때, 언제 어디서든 거래세, 통행세, 관세를 면제해 주도록 승인하였다.... 또한 나는 이 특허장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10파운드의 벌금을 물릴 것이다.’
왕 이 이렇게 특허장을 준 근저에는 봉건 영주들이나 교회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봉건 영주들도 도시 건설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이유는 시민의 경제력을 이용해 자신의 영토 주변을 활성화시켜 경제적 이익을 꾀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세 중기에 세워진 도시의 수는 엄청났는데, 오늘 날에 남아 있는 유럽 도시의 70%가 이 시기에 성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어 쨌든 영주의 속박에서 벗어난 도시들은 자유의 상징이 되어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중세 도시는 대부분 골목이 좁고, 하늘로만 뻗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는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빽빽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엄격한 서열 조직을 갖춘 조합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길드입니다. 조합은 도시민들의 이익과 친목 도모를 위해 조직한 단체로 고용문제, 물건 가격, 노동통제, 생산과 판매에 대한 규제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 가격은 일정해야 하고, 노동시간은 정해져 야간 작업이 금지되었으며, 조합원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먼 저 상인길드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특정 마을이나 도시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의 전부 또는 대다수가 참여하는 조합이었으며, 조합원들은 지방 상인이거나 원거리 무역상인일 수도 있고, 도매상이거나 소매상일 수도 있고, 취급하는 물건에 따라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수공업 길드는 특정 산업의 모든 기술자와 장인을 포함하는 직업 조합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위계질서를 지켰는데 이는 도제제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집니다.
장 인, 직인, 도제의 위치와 역할을 철저히 구분하였지요.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하는 장인(匠人)은 공인된 실력으로 자기의 공장을 경영하며 도제를 거느리는 기술자였으며, 도제는 장인의 집에 묵으며 그의 직업에 관한 기술을 익히면서 무보수로 일을 합니다. 그 대신 숙식은 제공받는 것이지요. 5년에서 9년 정도의 기술 습득 기간이 끝나면 노동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직인이 됩니다. 즉 독립 기술자가 되는 것이지요. 직인이 된 후 기술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걸작을 내어놓으면 직인은 장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제 제도는 고정되어 있는 신분제도와는 달라 일정기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므로 시민들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렇게 도시가 발달하자 도시들 간에 상권 확보와 자체 방어를 위해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롬바르디아 동맹과 한자(Hansa)동맹입니다. 롬바르디아 동맹은 이탈리아 도시들이 결성했던 것이고, 한자동맹은 독일 도시들이 결성했던 동맹입니다. 동맹에 가입한 도시민들만 외지(外地)와의 무역을 가능하게 하였는데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 쾰른은 한자동맹의 주요도시입니다. 동맹의 도시 대표들은 뤼베크에서 ‘Hansa 회의’를 열어 다수결로 정책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도 시가 발달하자 화폐경제도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노들에게서 생산물로 지대(땅을 임대해 주고 받는 것)를 받았던 영주들이 화폐를 요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농노들은 화폐지대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으로 가 생산한 물건들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플로린 금화는 13세기에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만든 화폐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도 시가 이렇게 자유의 바탕위에 조직적으로 발달하자 봉건 영주들의 땅에서 일하던 농노들이 도시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영주들은 농업 기술을 발달로 노동력이 남아돌아갈 때는 농노들의 도망을 방관하였으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쫓아가서 잡아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영주들에게 1년의 시간을 주고 도망간 농노들을 체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간 농노들은 1년하고도 1일이 되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었지요.
제 3기는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로 중세 후기를 말합니다. 이 때는 중세 도시의 체계가 점점 무너지는 시기입니다. 페스트(흑사병)의 대유행과 잇단 기근(양식이 없어 굶주림), 백년전쟁 등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입니다. 흑사병으로 유럽의 인구는 현저히 감소하고, 도시민의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떤 지방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호상(부유한 상인) 중심으로 시장독점 현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수공업자들과 하층민들이 투쟁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리하여 도시의 공동체적 성격이 약화되어 롬바르디아 동맹이나 한자동맹의 결속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노 동력을 상실한 영주들은 농노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주면서 농노의 신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 자영농(영주와는 상관없이 자기 땅에서 자기 먹을 것을 수확)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대를 올리는 악덕 영주들 때문에 급기야는 여기저기서 농민반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자크리의 난은 아주 유명합니다. 자크리는 당시 농민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던 자크를 집합명사화한 명칭입니다. 1358년 5월, 보베 지방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나 노르망디, 상파뉴 등 북프랑스 대부분으로 파급되었고, 군인출신인 기욤 칼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도시와의 제휴에 실패하였고, 반란 세력을 집결시키지 못해 한 달 동안 약 2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진압이 되었습니다.
이 렇게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중세 도시는 서서히 무너지고, 길드의 장인들은 십장(일꾼들을 감독하는 우두머리)이나 기업가로 전환해갔고, 직인과 도제들은 일당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부유한 상업자본가들의 통제된 회사가 생기면서 길드들은 경제의 중심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중세 도시의 모습과 체제는 조금씩 붕괴되어 갑니다.
[
'精神을 건강하게 > 기억해야할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신의 추억 - 01 (0) | 2014.05.06 |
---|---|
청일전쟁(淸日戰爭):1894~1895년 (0) | 2014.02.11 |
문명(文明)의 탄생 (0) | 2014.02.11 |
1848년 2월혁명 (0) | 2014.02.11 |
산업혁명 (0) | 2014.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