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 와 茶/茶 茶 茶

동산의 즐거움으로, 태산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차 한잔

하늘벗삼아 2007. 1. 1. 18:10






동산의 즐거움으로, 태산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차 한잔

차 한잔을 마시는 데에도 다양한 경지가 존재한다. 태산에 오르고 나서야 동산이 낮음을 안다는 말처럼, 다도를 통해 태산의 경지에 이르러 봄은 어떨까.

똑같은 이슬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벌은 꿀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차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차를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시는 사람에 달려 있다. 차를 마심이 자기의 편협한 마음을 키워주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차는 오히려 마시지 않느니만 못하리라. 반면에 차를 마심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의 독을 제거하고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으며 가까이의 벗들과의 교제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면 그런 차의 가치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차 한잔이 침묵의 노래요 별들의 정원이며 우주의 숨결로까지 다가올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차의 생화학적 특성을 훨씬 뛰어넘는 경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을, 불교인들에게는 부처님의 광명을 그리고 유학자들에게는 공맹의 도를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사이비 차교주의 억지 논리라 여길 수도 있지만, 하지만 어쩌랴 차를 마시면 분명히 느껴지는 것을. 물론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어야 하고, 불교인이라면 나름대로 계를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며, 문리를 궁구한다면 사서(四書) 정도는 정독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종교이든 당신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면, 차는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 모습으로 당신이 가는 길에 기댈 수 있는 좋은 안식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눈은 단지 시각이다. 그러나 이 작은 두 눈으로 인해 우리 몸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안 좋은 광경을 보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이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가슴이 더없이 넓어지게 된다. 좋은 것을 바라보면 그것과 닮아가는 법. 그러니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보자. 그리고 찻잔을 들어 대지의 축복을 마시자.

 

태산에 오르고 나서야 동네의 동산이 낮음을 알았다는 말이 있다. 학문의 완성으로 인식의 변화와 새로운 광활함을 마주한 감동의 순간에 대한 노래이다. 차 한잔을 마심에도 다양한 경지가 존재한다. 동산에서 마시는 차와 태산에 올라 마시는 차는 벌써 바람이 틀리다. 어찌 같은 차맛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 제 스스로 아니 오고 공연히 좋은 경치 없다 말하네”라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동산의 차도 차다. 분명 차는 그 자체로 즐겁다. 하지만 그대 아는가 태산의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같은 시간에 같은 차 한잔이지만 누구에게는 동산의 즐거움으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태산의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태산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당신과 나의 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