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 와 茶/茶 茶 茶

비싼 차가 나의 품위를 높여준다: 사치형

하늘벗삼아 2007. 1. 2. 01:04






비싼 차가 나의 품위를 높여준다: 사치형

또 다른 유형으로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치형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홍차 회사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개발된, 여러 등급의 차를 섞어 최상의 맛을 내는 블렌딩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 기술은 회사의 극비로 여긴다. 블렌딩의 역사 또한 매우 재미있게 시작되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차를 실은 범선이 중국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반년 이상이 걸렸다. 때문에 차는 오는 도중 비바람과 높은 온도에 의해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변질된 차에 질이 좋은 차를 섞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블렌딩 상업화의 시작이다. 당시 상인들의 상술로 인해 유럽인들은 변질된 차가 포함된 차에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만족스러워했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의 1885년작 ‘티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여인’. 동양에서 전래된 차 문화는 유럽 상류층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여유롭게 티 타임을 즐기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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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좋은 도구가 된다. 서양인들이 차를 마시는 초기의 그림을 보다보면 신기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차를 찻잔에 마시지 않고 찻잔받침에 부어 마시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것은 유럽 사람들이 동양의 다도를 접하고 그 문화에 감탄한 나머지 영문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모방한 결과이다. 당시 동양의 차 문화는 유럽 상류층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져, 차를 마시는 자체가 권력이나 부를 상징할 정도였다. 동양에서는 말차(가루로 된 찻잎 분말을 이용하여 거품을 내 마시는 차) 등의 진한 차를 마실 때, 순한 맛을 느끼기 위해 공기와 함께 들이쉬며 소리를 내며 마셨다. 이 모습을 모방한 유럽 사람들은 찻잔에 담긴 차가 뜨거워 우습게도 찻잔받침에 차를 따라서 의미도 모른 채 소리를 내며 마셨던 것이다. 한 잔의 차를 우려내기까지에는 번거로운 과정들이 많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그들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충분히 자신을 과시할 만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즐기며 만족했다. 그들은 차의 맛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면을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도 70년대 후반부터 일정한 형식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다례(茶禮) 혹은 다도(茶道)가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다례의 주된 목적인 차를 맛있게 우려내고 타인과 진정한 교감을 하며 정신적 풍요로움 얻는 것을 잊어버리고, 값비싼 다구와 옷의 과시 그리고 남들과 다른 문화의 향유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기에 급급하다. 물론 가치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지만, 유럽인들이 처음 차를 모르고 찻잔받침에 차를 따라 마셨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동진시대 [진중흥서(晋中興書)]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육납이라는 사람이 오흥의 태수로 있을 때 위나라 장군 사안이 뵙기를 청하자 육납은 차와 과일만을 대접하였다. 이를 본 육납의 조카는 서둘러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고 육납에게 칭찬받기를 기대했지만, 육납은 사안을 돌려보낸 후 오히려 조카를 몽둥이로 때리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름난 다인(茶人)으로 알려진 사안에게 융숭히 대접하는 길은 좋은 차를 정성스럽게 끓여 드리는 것뿐인데, 오히려 진수성찬으로 사안을 욕되게 했으니 육납이 그토록 부끄러워 화를 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