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金洙暎)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거미 - 김수영(金洙暎)
내가 어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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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洙暎)
/ 1921~1968
시인. 서울에서 출생. 선린상고를 거쳐 도일, 도쿄 상대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했다가 1944년에 만주로 이주하였다. 그 곳에서 교원 생활을 하는 한편, 연극 운동도 전개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귀국, 시작
활동을 하여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연희대 영문과 4년에 편입했으나 중퇴하고,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남침 때에는 미처 피난 하지 못해 의용군에 징집되었다가, 1952년에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풀려 나왔다. 그 후 교편 생활을 하고, 잡지사, 신문사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1956년 이후에는 자택에서 양계를 하면서
시작과 번역에 몰두하였다. 그 무렵을 전후하여 [웃음] [긍지의 날] [여름 뜰] [일] [거리]등에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경험해야 했던
지성의 방황과 고뇌를 육성으로 노래하였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 1회 시협상을 받았다. 그 밖에
<20세기 문학의 영역>등의 저서와 역서를 남겼다.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등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등이 사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