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소수자들의 꿈 그리고 현실
<아기공룡 둘리>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연설은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던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였던 흑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을…. 그래야 백인조차도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의 믿음은 진실이었으며, 지금도 미국사회는 물론 세계의 소수자 인권 운동가들이 추구해야할 가치이다.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다. 둘리와 또치, 도우너, 마이콜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버림받지 않고 고길동 아저씨와 희동이, 영희, 철수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꿈이….
왜 이런 꿈을 꿀까? 남극에서 빙하 타고 온 둘리, 깐따비아별에서 몬따비아별로 가던 도중 지구에 불시착에 도우너, 라스베가스 서커스단에서 학대를 받으며 묘기를 부리다 도망친 타조 또치, 가능성 없는 목소리와 외모로 가수를 꿈꾸는 마이콜, 이들 모두가 우리사회 소수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이방인이자 사회적 소수자인 이들이 고길동 아저씨와 함께 다투고 도우며 살아가는 꿈. 이 꿈이 바로 내가 꾸는 꿈이다.
그런데 꿈은 꿈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던 <아기공룡 둘리>의 가족들은 ‘차이’를 넘어 인류애를 이뤄냈다. 하지만 22살 먹은 둘리와 그의 친구들은 도시문명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는 많은 아이들에게 모든 인류가 ‘차이’를 딛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4년 젊은 작가 최규석의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차이’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 둘리는 초능력을 쓸 수 있던 손가락을 잘린 초라한 중년의 노동자로 전락했다. 둘리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초능력은 단순히 외계인들에게 받은 기능뿐만이 아니었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초능력은 둘리에게 성스러운 ‘노동’이었다. 성스런 노동의 생산물 초능력은 아이들에게 주는 꿈과 희망이었다. 손가락이 잘린 둘리, 그는 더 이상 아이들의 우상이자 친구가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버림받은 소수자일 뿐이다.
도우너는 사기꾼이 되어 고길동의 재산을 사기처서 말아먹고 결국 철수에 의해 과학자한테 팔리는 신세가 된다. 철수는 희동이를 구하기 위해 도우너를 팔았다. 거리의 주먹패가 된 희동이를 감옥에 안 보내려면 철수에게 돈이 필요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려고 비정규직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은을 묵인한 현대중공업노동조합처럼 말이다. ‘정상’의 범주 안에 있는 우리의 안락(安樂)은 ‘비정상’의 범주에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희생으로 보장받는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공주병 타조 또치는 동물원에서 젊은 타조에게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으며, 마이콜은 밤무대에서도 안 팔리는 그렇고 그런 뮤지션이 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현실, 이것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현실이다.
도우너를 구하려고 동물원에 있는 또치를 찾아간 둘리에게 그녀는 “둘리야!! 이제 제발 네 걱정만 하고 살아!! 더 이상… 명랑만화가 아니잖니!”라고 외친다. 아기공룡 둘리는 명랑만화였다. 그러나 현실 속의 둘리는 손가락이 잘린 “민증(주민등록증)도 없는 새끼!!”일 뿐이다. 둘리는 공장 사장의 공갈협박에 이은 해고통보에 힘없이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시대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요, 노숙인이요, 장애우일 뿐이다.
원망스럽다. 아기공룡 둘리가 아기공룡 둘리로 남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22년전 둘리와 도우너, 또치, 희동이, 영희, 철수는 고길동의 보호아래에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 오마주(hommage) - '존경'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상예술에서 특정 작품의 대사나 장면 등을 차용함으로써 해당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
흔히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데, 다른 작가의 재능이나 업적을 기리기위해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자신의 작품에 넣는다. 특정 장면을 그대로 삽입하거나 유사한 분위기를 차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오마주는 영향을 받은 특정한 감독에 대한 존경을 작품 속에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존 영화에서 몇 장면을 모방해 풍자적으로 비꼬는 패러디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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