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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안사르Ⅲ|

하늘벗삼아 2012. 11. 28. 00:11


 

 


 

 

아우슈비츠와 안사르Ⅲ



봉인된 기억

20세기 야만과 광기, 학살의 상징은 아우슈비츠였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증언해주는 중요한 아이콘이다. 할리우드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더라도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안방에서조차 알 수 있게 됐다.

 

홀로코스트의 악몽은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도 고발하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Maus>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소재로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고발해 전세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유대인은 쥐, 독일군은 고양이로 묘사해 우화적으로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고발했다면, 홀로코스트를 리얼리즘 실사로 그려낸 최초의 고발 만화는 파스칼 크로시의 <아우슈비츠>다.


<아우슈비츠>는 노인이 된 카직과 그의 부인 세시아의 회상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944년 3월 , 이 부부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과 광기에 휩싸인 반문명의 현장을 보게 된다. 그건 바로 나치 독일군의 모습이었다. 숨쉬기도 갑갑한 수송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가던 장면, 조롱의 눈빛으로 실려 가던 유대인을 쳐다보던 폴란드 소년의 모습,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가스실의 참혹한 주검들, 이 모든 것은 전쟁의 광기가 부른 인간성 상실의 역사적 증거였다.


파스칼 크로시는 왜, 40여년이나 넘게 가둬 둔 악몽의 봉인을 풀었을까? 그리고 왜, 비슷한 시기에 ‘홀로코스트’라는 악몽의 봉인이 다른 문화장르에서 풀리기 시작했을까?


파스칼 크로시는 <아우슈비츠>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홀로코스트와 관련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그 어떤 민족도 자신들만을 위해 역사를 쥐고 흔들어댈 권리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작가는 1993년 파리 제 11구 구청에서 열린 ‘강제수용소 생존자의 그림전시회’에서 본 크로키를 보고, 그 충격으로 작업에 뛰어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물론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개인적인 진정성과 별개로 비슷한 시기에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양한(그러나 비슷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홀로코스트 산업

핀켈슈타인은 그의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홀로코스트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돈에 눈이 먼 유대계 미국인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현재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의 핑계거리로 이용되고 있다.


사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유대인 뿐만은 아니었다. 나치에 의한 최초의 정치적 희생자는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나치가 최초로 대량학살 한 희생자들도 유대인이 아니라 장애인이었다. 장애인과 소수인종, 즉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근대적 시작은 우생학(eugenics)이었다. 알다시피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우생학은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계통분류학적으로 제거하는 소극적-부정적 우생학이었다. 우생학은 당시의 ‘가장 우수한 민족’에게 호소력이 있었고, 이들을 통해 지배이데올로기로 전화하였다.


우생학이 얼마나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였나 하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도 1913년 연설에서 “범죄자들은 단종시켜야 하며, 정신박약아들이 자손을 낳는 것을 금지해야”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당시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개화된’ 미국인들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우생학적 인종주의는 나치 독일에서 극단적인 꽃을 피우게 된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10~15만명의 장애인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나치 독일의 극단적인 인종주의는 집시들을 학살의 대상으로 삼아 50여만명의 집시들을 유대인과 같은 방법으로 학살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집시들의 대량학살은 유대인의 대량학살과 엇비슷한 정도였다.


나치의 제노사이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에 건립된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장애인과 집시들의 대량학살을 인정하게 되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인의 독점적 특권의 손실, 즉 유대인의 윤리적 자본의 손실당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윤리적 자본은 그들에게 꽤 많은 이윤을 창출해준다. 그런 이유로 유대 자본의 신문 ‘뉴욕 타임즈’는 일기예보 다음으로 이스라엘 기사를 자주 다룬다. 이에 대해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 신화는 문화적 테러리즘”이라고 비판한다.


핀켈슈타인의 지적에 동의한다.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를 읽어 보면 핀켈슈타인이 얼마나 정확히 지적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자신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던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죽은 자들을 위한 가장 고결한 태도는 그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디파다

조 사코가 10년 전 겨울(1991년 말에서 1992년 초까지)에 다녀온 팔레스타인을 다시 돌아보자. 10년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 세력인 하마스의 보복성 테러, 다시 이어지는 이스라엘군의 보복성 공격, 악순환이다. 돌고 도는 피의 보복은 지난 2004년 3월 7일에도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사론 정권이 정치적인 이유(이스라엘은 가지 지구의 치안을 이집트나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로 넘겨줘야 한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마스 같은 과격 급진단체가 치안을 장악할 대 발생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저항이다. 그래서 가자 기구의 치안을 넘겨주기 전에 하마스와 같은 급진 과격단체를 소탕하려는 것이다. 2004년 3월 7일 발생한 이스라엘군의 선제공격도 그런 정치적 이유를 같고 있다.) 로 가자 지구를 공격해 팔레스타인인 14명이 사망하고 59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 가운데는 8세와 15세 소년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온전히 가진 민족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수상쩍다. 홀로코스트를 한 번이라고 제대로 성찰했다면, 현재 이스라엘의 광기와 야만, 폭력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정도가 무척 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성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안사르Ⅲ를 아는가? 아우슈비츠가 나치 독일의 광기와 야만을 상징하는 단어라면, 안사르Ⅲ는 이스라엘의 광기와 야만을 압축하는 단어이다. 이곳은 1988년 3월 인디파다로 급격하게 늘어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감옥이다. 또한 안사르Ⅲ는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의 인권의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왜, 아우슈비츠를 팔아먹는 홀로코스트 산업은 존재하는데, 안사르Ⅲ를 팔아먹는 인디파다 산업은 없을까?


소재의 고갈을 호소하는 할리웃 영화에서도 그 위대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인 인디파다를 영화화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인디파다’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1987년 12월 8일, 6월 민중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화를 급진전시킨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떠들썩거렸을 때,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 트럭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태운 두 대의 트럭을 고의로 들이받으면서 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그 위대했던 1차 인디파다의 도화선이었다. 초기의 인디파다는 팔레스타인 전 민중이 참여하는 민중봉기의 모습을 띠었다.


매우 조직적으로 진행된 민중봉기인 1차 인디파다는 항의와 파업, 시민불복종 운동과 함께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에게 돌과 화염병으로 대항하는 무력시위도 이루어졌다. 무력시위 장면 뉴스를 통해 자주 보았을 것이다. 1994년 5월까지 지속된 1차 인디파다 동안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392명이 발생했고, 그 중 어린이들이 353명 포함되어 있다. 이런 통계수치를 보면 이스라엘군의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우리는 쉽게 알게 된다.


뭐 이따위 어린시절이 다 있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에피소드 ‘난민촌의 소년들 THE BOYS’를 보면 소년들이 어떻게 인디파다에 참여했는지 자세히 그려진다. 조 사코는 처음 봉기의 횃불이 타올랐던 자발리아 난민촌을 방문한다. 그는 여기서 ‘파라스’라는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에 소속된 15세 소년을 만난다.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의 조직원으로 발탁된 파라스는 왜 인디파다에 참여하게 되었냐는 조 사코의 질문에 “전 이스라엘 군인들이 부모님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봤어요. 제 형들도 때렸죠. 형들 중 하나는 감옥에 있어요. 제게 그것은 나라를 되찾는 길, 점령에서 벗어나는 길, 세계에 우리를 알리는 길”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파라스가 해방전선에 가입한 나이는 겨우 13세였다. 파라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학교로 등교하는 아침에 이스라엘 군인을 만나면 한 판 뜨고 만다. 그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생활 속에 배어 저항으로 들어난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은 욕구불만을 발산할 길이 없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경제 봉쇄로 인한 빈곤,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지도부에 의한 청소년 클럽 활동의 금지령, 이스라엘의 탄압에 의한 가족의 희생 등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을 인디파다의 노래를 부르고, 싸우는 것밖에는 모르는 전사로 만들어냈다. 뭐 이따위 어린시절이 있지?


사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우리가 알기로 중동 유일의 민주국가는 이스라엘뿐이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 집집마다 이스라엘군에게 죽거나 끌려간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노골적인 고문은 피하는 대신 천천히 사람의 피를 말리는 ‘적당한 신체적 압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그밖에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폭력을 알았더라면? 디아스포라를 극복한 민주국가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큰 상처를 껴안고 산다.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가 그 두 가지다. 깊은 망국의 한과 그 망국의 현실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과 폭력의 악순환 속의 삶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영국과 미국의 도움(영국와 미국은 중동의 단결을 막고 석유자원의 지속적 공급을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다)으로 건설한 이스라엘에 애착이 심하다. 디아스포라를 경험했고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이기에 이스라엘에서 성찰적인 민족간의 공존이 가능하리라 생각해보지만, 현실은 배타적 인종주의와 시오니즘이 정치적 영향력을 더 끼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인문서나 CNN 뉴스, 알자지라 방송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이는 분쟁의 실체를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위 벗들이 이런 유의 문제를 물어온다면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만화 형식을 빌린 르포이다. 그래서 말풍선에 그 많은 대사를 쓴 것도 모자라 설명하는 기사문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파스칼 크로시의 <아우슈비츠>의 시적 대사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인류는 성찰의 기회를 항상 잃어버린다. 홀로코스트는 위정자들의 기득권을 위해 변질된 채 한낱 볼거리로 전락해버렸고, 인디파다는 위정자들의 기득권을 위해 가려져 있다. 성찰을 위해서는 성찰의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인 텍스트의 출현이 필요하다.


<쉰들러 리스트> 유의 텍스트들은 대중적인 흥밋거리는 될지언정 성찰적 텍스트라고 보기가 힘들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유대인의 독선과 오만을 꼬집어 지적함으로써 과거의 기억과 현대의 오만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래도 왠지 부족해 보인다. 그럼 파스칼 크로시의 <아우슈비츠>는? 작가가 보여준 진정성과 예술적 경지는 인정한다. 물론 독일에 대한 프랑스인의 감정이 작품 속에서 묻어나는 혐의를 벗을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과거의 상처와 소통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라는 소재만 가지고 역사적 성찰의 텍스트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홀로코스트 산업에 동조한다는 혐의가 더 짙게 씌어지지나 않을까?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파스칼 크로시의 <아우슈비츠>가 광기와 야만, 학살에 대한 역사적 성찰의 텍스트로 탈바꿈하려면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이 그 부족함을 메워줄 때만 가능하다.


대석학 에드워드 사이드는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의 서문에서 “사코가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의 삶에 대한 관찰자로서 특이한 점은 그가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만화는 한결같이 누군가의 승리로 끝난다. 선이 악을 이기고 정의가 불의를 타도하며 또는 두 연인의 결혼으로 끝난다.…(중략) 그러나 사코의 <팔레스타인>은 그런 식의 만화가 아니다. 그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패배자들이며, 변두리로 내몰려 실의에 찬 삶을 살아가며 조직의 힘에 의지할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팔레스타인>의 미덕을 지적했다.


그렇다고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투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집단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드는 식의 투쟁에 동조하지 않는 것 같다. 집단 시위 장면에서 느껴지는 냉소적 거리감을 보면 말이다. 그도 미국인으로서 거리감을 갖고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아마 극복하지 못한 오리엔탈리즘의 편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팔레스타인의 참혹함에 연대하는 뜻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멍청하게 보이는 미국청년으로 그려냈다.


<아우슈비츠>와 <팔레스타인>은 묘한 대립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폭력의 대상이 폭력의 주체가 되어버린 현실의 역설을 두 만화는 교차하면서 고발하고 있다. 그 고발 속에서 우리는 독일군 병사들과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을 대면하게 된다.


악은 평범하다.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주장을 우리는 되새겨 봐야 한다.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유하지 않음’ 때문이었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입장을 떠나 ‘사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공유한다. 대량학살을 경험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자신들이 치욕과 공포를 경험했던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안사르Ⅲ와 가지 지구로 몰아넣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