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그들 /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 교수 )
평소 알던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소식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 나이에도 작가의 부음이 유난히 스산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우리를 대신해 삶의 신경통을 앓아온 시대의 증거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서민의 친구였다. 수수한 모습이 그랬고, 주름 잡힌 생애가 그랬고,
비수를 감춘 담담한 문장이 그랬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였지만,
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숨 가쁜 시대를 힘겹게 살아낸 군상들의 표정이 어른거린다.
어쨌든 살아냈다는 것 외에 내세울 것 없는
한국의 소시민들, 때로는 가식과 허위와 생존본능을 방패 삼아
삶의 공격을 막아냈던 중장년과 노년세대의 회한은 그녀의 감각을 통과하면서
색깔 있는 스토리로 변한다. 세월과의 대면에서 발생하는 하찮은 일상적 사연들이
그 자체로 문학적 서사임을 보여준 작가, 개인적 표정에서 사회를 재구성해 내는
작가 박완서, 그래서 그녀와의 작별은 애틋하다.
요 몇 년 그런 작가들이 우리 곁을 떠났고, 몇 명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위대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혼망한 삶의 갈피를 잡아주는 작가들,
사회적 풍화작용에 닳는 실존의 허망한 소멸과 싸우는 괜찮은 작가들과
이 시대를 동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해방 후 65년, 전쟁과 독재, 개발과 재난을 통과한 상전벽해의 세월을 해방세대로 불리는
이런 작가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무난히 건널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런 간난의 세월이었기에 괜찮은 작가들을 이 세상에 내보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산맥과 들판은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가들을 유난히 많이 잉태했다.
충청도 농촌마을, 엄동설한을 견딘 대추나무엔 고(故) 이문구의 걸쭉한 사투리가 걸려 있을 것이다. 동백꽃 흐드러진 남쪽 해안선엔 여전히 이청준의 문학혼이 떠돌 것이고,
지리산 악양벌엔 박경리의 역사적 언어가
때이른 봄나물처럼 푸릇푸릇 지천으로 돋았을 것이다.
박완서는 박경리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그녀는 아마 신이 자신을 솎아낼 시간을 예감했을 것이다.
‘신이 자신을 솎아내는 것’을 허허롭게 수긍하는
이 운명론적 인식은 해방세대만의 특유한 세계관이다.
젊은 세대와 작가들에게 이 시대가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의 초원이라면,
해방세대에게 그것은 가족과 청춘의 기쁨을 한순간에 매몰시키는 활화산이었다.
그 활화산의 언저리에서 조바심 내며 살았던 세대,
또는 격동의 역사에 부딪혀 어눌하고 피동적으로 살아야 했던
세대의 체험을 언어로 체화한 작가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시대와의 불화는 어느 세대이건 작가의 고유 자산이겠지만,
삶의 공간을 짓밟고 치명적 상처를 입히는 불화는 드물다.
해방세대의 작가들은 누구나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들의 통증이 크고 깊을수록 한국 사회는 역사의 상처로부터
서서히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들에게 진 우리의 빚이다.
생기발랄한 젊은 작가가 풍부한 감성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회 풍속도를 그린다 해도,
전화(戰禍)에 가족을 잃고 실존의 벼랑에서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나간 정신의 치열함과
문장을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런 작가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만년에 누린 사회적 명성도 경제적 안정도 이들에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이들에게 유일한 정신의 은신처는 고향이었는데,
고향은 끊긴 청춘의 꿈을 다시 이어주는 출발점이었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떠올리는 고향길은 그래서 상처 입은 마지막 세대의 눈물겨운 상징이다.
이청준은 죽기 전 전남 장흥의 산야를 헤맸다.
서편제의 판소리 가락이 한스럽게 울리는 그곳에서 작가의 존재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서울과 원주를 떠돌았던 박경리는 아득한 청춘이 묻혀 있는 통영으로 돌아갔다.
편안한 가정생활이 가능했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박완서는 전쟁 때문에 포기했던 처녀시절의 꿈을 떠올렸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수줍게 말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고
모든 인위적인 기획은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고 섰다.
극단과 위기가 첨예하게 중첩된 한반도였기에 이 세대 작가들의 문학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의 문학정신은 화해의 문, 생명의 집이다.
귀향하고 싶은 그곳, 고향은 아마 폭력 없는 세계의 상징일 것이다.
이승과의 작별과 저승과의 해후를 고향에서 접목시키고 싶은 그들의 바람은
우리에겐 압축성장이 끊어버린 세대경험의 단절,
시대정신의 불연속선을 다시 이어보라는 마지막 권고처럼 들린다.
출발점에 다시 서서 현실과 꿈을 화해시키는것 ,
그것이 지도상에 존재하는 지리적 지명이 아니더라도,
후세대가 앞서 살다간 세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 정서의 고향 " 같은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떠나는 그들 , 떠날 그들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중년세대의 필자가 설을 맞아
고향길에 나서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그 때문이다.
중년세대에게 그 공감대가 없다면,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으랴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