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神을 건강하게/독도,일제침략

일제의 마지막총독 아베는 조선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펌>

하늘벗삼아 2011. 9. 28. 11:30




일제의 마지막총독 아베는 조선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데, 조선국민이 제 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위 말을 한 일제의 마지막 총독 아베가 뉴라이트란 탈을 쓰고 다시 돌아왔다.
미군정을 등에 엎은 이승만에 의하여 나라를 팔아먹고도 그 기득권을 그대로 누리게된 친일파들은 그들의 정신적 종주국인 일본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친일을 국기(國基)로 삼은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거치더니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한 박정희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쥐게 되었다.
온갖 독재와 철권통치로 장기집권을 하다보니 대한민국은 완전 친일파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이어진 친일의 맥이 이 땅에 너무도 깊이 박혀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군, 경찰, 학계 할 것 없이 모두 친일파 일색이었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친일은 견고해졌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일제 식민지배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정신병자 친일파들에 의해 노골적인 일본 찬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출신이 대통령이 되자 이제는 대놓고 일제 식민지배를 찬양하고 나섰다. 

일본을 모국으로 알고 일본을 사랑하는 친일파들은 모두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
인구가 반으로 줄더라도 말이다. 

▲  아베의 예언은 백년도 안되어 적중하고 있다. 기가 막힌 에언자이다.    © 역사복원신문

 

 

1879 이시카와 현[石川縣]~ 1953.

일본의 제9대 조선총독.

 

1897년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육군참모본부 총무부장·군무국장을 거쳐 1929년 육군차관에 임명되었다.

그후 대만군사령관·군사참의관 등을 거쳐 잠시 육군상 임시대리를 지냈다. 1936년 군부 내 파시스트들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쿠데타인 2·26사건과 관련하여 예비역으로 전역했다.

 

1936년 8월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 내각이 사퇴한 후 조각을 위임받아 소수각료제 내각을 출범시켰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전쟁에의 불개입을 선언하고 중일전쟁의 조기 종결을 추진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은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부의 반발을 초래하게 되었다. 1940년 악화된 식량사정을 타개하기 위해 실시한 쌀값 인상안이 도리어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자, 제75회 제국의회에서 불신임을 받아 1940년 1월 총사직했다.

 

그후 중국파견 전권대신을 거쳐 익찬정치회(翼贊政治會) 총재, 귀족원의원을 역임했고, 1944년 7월에 마지막 조선 총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후 전쟁수행을 위한 물적·인적 자원 수탈에 총력을 기울였다. 징병(徵兵)·징용(徵用) 및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의 기피자 색출에 광분했으며, 심지어는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근무령서(挺身勤務令書)를 발부했고, 불응시는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내렸다. 1945년 7월에는 국민의용대 조선총사령부를 조직하여 조선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자, 9월 9일 이후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