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神을 건강하게/삶의 흔적

닐 암스트롱

하늘벗삼아 2012. 9. 4. 11:36






닐 암스트롱은 6․25 참전용사였다
- 6․25 전쟁 때 해군 전투기 78회 출격, 애기 추락해 적지에서 극적 구출되기도 -

 

 

NACA(미국 항공자문위원회) 고속비행국 실험조종사 시절의 닐 암스트롱.(1956년 11월 20일.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 기지에서 촬영) <Wikipedia>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달착륙선 아폴로 11호 선장으로 달에 착륙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의 발자취를 남긴 닐 올던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1930~2012) 우주비행사가 지난 8월 25일 타계하자, 세계의 언론들이 머리기사로 다루고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닐 암스트롱 우주비행사가 6․25전쟁 참전용사였다는 사실이 최근에 널리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각별하다.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은 지난 8월 31일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가 암스트롱의 유족에게 위로의 서신과 함께 태극기와 감사 액자 등 기념품을 전달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1930년 8월 5일 오하이오 주 와파코네타 외곽에 있는 조부의 농장에서 태어난 닐 암스트롱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선장으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라는 신기원을 이룩하고 지난 25일(현지시각) 심장병 합병증으로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대학재학 중 해군에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가 된 그는 21살이 되던 1951년 8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에 파병되었다.
1951년 9월 3일 북한 지역의 산길 비행 중 애기의 우측날개가 대공 케이블에 걸려 부러지면서 추락하기 직전 위기일발로 비행기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적진에 떨어진 그는 미 해병대의 구출작전으로 극적으로 생환하여 부대로 복귀하였고, 이후에도 계속 전투비행임무를 수행하여 참전 기간에 78회를 출격하는 전과를 세우고 1952년 8월에 전역하여 귀국했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던 비행기술과 인간 인내력의 경지를 바탕으로 미국 항공자문위원회(NACA=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고속비행국의 실험제트기 테스트 과정을 거쳐 우주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된다.
 

(좌) 아폴로 11호 승무원. 왼편부터 선장 닐 올던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달착륙선 조종사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Buzz Aldrin). (우) 2012년 8월 31일 신시내티에서 열린 암스트롱의 가족 장례식장에 릴 암스트롱의 소년 시절 사진이 놓여있다. <Wikipedia>

 
1966년 3월 16일 제미니 8호의 지휘 조종사로 세계 최초의 위성 도킹에 성공한 그는 드디어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는 우주선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달을 밟은 후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을 남겼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닐 암스트롱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고자 그의 한국초청을 추진하였으나 건강상 이유로 한국 방문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닐 암스트롱 유족에게 전달한 위로 서신에서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고인을 애도하고 삼가 명복을 빈다.”라고 인사하고, “고인의 한국전에서의 희생과 공헌으로 오늘날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전쟁 당시 전투조종사로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고인의 공적과 헌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라고 위로하였다.
 
 
실버넷뉴스 김성근 기자 ksk3609@silver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