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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하늘벗삼아 2014. 5. 11. 09:35




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1974년 12월 15일을 전후하여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기자들과 경영진의 일시적인 단결을 가져왔다. 하지만 광고탄압의 장기화로 회사는 권력에 야합했고 굴복했다. 그 결과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한 기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백기범과 신홍범을 편집권 침해를 이유로 해임했다. 기자들은 반발했고 조선일보는 복직을 약속했다. 기자협회 조선일보분회는 총회의 투표로 자유언론 수호 투쟁을 위해 전열을 정비했다. 조선일보의 빈번한 약속 번복과 취소로 조선일보분회는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고,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은 강경하게 응수했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농성주도자 등 5명에 대한 해고를 결정했다. 이에 기자들은 임시 분회 집행부를 선출하고 부당해고 철회와 정론지로의 복귀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결의했다.
농성 기자들은 부·차장들의 제작 거부 동참을 호소하고 기자 모집 사고(社告)에 항의하며 「성명서1」과 「성명서2」를 잇따라 발표했다. 또한 “반일·반공·반독재 55년 동안 점철된 조선일보의 지령이 1975년 3월 7일자로 정지되었음을 선언”하고, “부당 해임된 기자7명의 복직”과 “현 편집국장단의 인책 사퇴”등을 결의했다. 회사는 농성 주모자 김명규 등 5명을 해고 처분하고, 11일에 4명을 해고, 37명을 무기정직시켰다.

동아일보는 3월 8일 경영악화를 이유로 심의실, 기획부, 과학부, 출판부를 없애고 직원 18명을 해임했다. 이에 기자협회 동아일보부회는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분회장 해임을 시작으로 17명을 무더기 해임했다. 사원들은 농성을 계속했다. 3월 15일 편집국장 송건호는 사표를 제출했다. 농성의 장기화와 동아일보에 대한 규탄이 거셌지만 권력과 결탁한 동아일보는 농성 기자들을 강제로 축출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해직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들은 각각 ‘조선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와 ‘동아 자유언...

80여건의 사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중복사료도 발견된다.
린다 존스가 기증한 동아투위 3월 25일자 <선언문>(등록번호 : 517000)
‘조선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의 소식지인 <조선투위 소식>(등록번호 : 486505 외)과 ‘동아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의 소식지인 <동아투위 소식>(등록번호 : 417066 외)을 비롯해서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395098 외)와 담화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백서>(등록번호 : 109677 외)도 눈에 띈다. 주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기증받은 사료들이다.
한편 <동아투위가 동아일보사에 보내는 공개장>(등록번호 : 486172)과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의 명단이 담긴 구속자명단(등록번호 : 521205)도 소장하고 있다. 박물류로는 1975년 동아투위를 돕기 위해 제작한 손수건(등록번호 : 431284)이 있다.
조선투위,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 송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