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두통약 뇌신
이승하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면
세상은 졸음에 겨워 노랗게 되곤 했습니다
가게 한 귀퉁이에서 어린 저는 졸고
어머니 이맛살에는 깊은 골이 패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괭이질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누르고
나중에는 손등으로 이마를 때리고 때립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포 나중에는 하루에 다섯 포
머릿속에 거머리가 기어다니는 것 같구나
약의 양이 느는 동안 어머니는 늙어갔습니다
노란 셀로판지 하늘 붉은 색으로 바뀌면
어머니는 마침내 저를 깨우고
저는 약국에 가 뇌신을 사오곤 했습니다
한 사발 물과 함께 이맛살이 평평해지면
어머니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시면서
아이고, 머리가 안 아프니 살 것 같다
아들 보며 희미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어느 날은 뇌신 한 포 몰래 먹어 봤더니
세상이 금방 노랗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오래오래 잠들고 싶었을 따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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