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것들/詩 그리고 글..

"어머니의 편지"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Sergei Aleksandrovich Yesenin, 1895-1925)

하늘벗삼아 2013. 4. 29. 11:31



                                             Marc Chagall(1887-1985)_"Green Violinist"

                                            (1923-1924. Oil on canvas. 108.6 x 198 cm.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어머니의 편지

  -세르게이 예세닌(1895-1925)

 

 

  이제

  뭘 더 생각할 게 있겠는가,

  이제 뭘 더 쓸 게 있겠는가?

  내 눈 앞

  우울한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는 이렇게 쓰신다.

  "될 수 있으면 말이다, 얘야,

  크리스마스 때

  우리한테 내려오려무나.

  내게는 목도리를 하나 사 주고,

  아버지께는 바지를 한 벌 사 다오.

  집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단다.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나도 이젠 늙었고

  몸도 영 좋지 않단다.

  …………

 

  사랑하는 내 아들아,

  대체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토록 얌전하고,

  그토록 순한 아이였는데.

  모두들 앞을 다퉈 말하곤 했지.

  저 아이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네게 품었던 우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구나.

  게다가 더 가슴 아프고

  쓰라린 것은,

  그나마 네가 시로 버는 돈이

  꽤 많을 것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네 아버지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믄

  얼마를 벌든 간에,

  네가 돈을 집에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

  네 시가 그토록 서러운 걸 보면

  나도

  알겠다,

  시인들한텐 돈을 잘 안 주나 보다는 걸.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요즘은 온통 슬픈 일 투성이다.

  암흑 속에서 사는 것만 같구나.

  말(馬)도 없단다.

  네가 집에만 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에겐 모든 게 있을 텐데,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

 

  그랬더라면 더 당당하게 살았을 텐데,

  아무한테도 끌려다니지 않고,

  너 역시나

  필요없는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네 처한테는

  실 잣는 일이나 시키고,

  너는 아들답게,

  우리의 노년을 돌보지 않았겠느냐."

  …………

 

  편지를 구겨 버린 나는

  우울해진다.

  정말이지 내 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그러나 내 모든 생각은

  나중에 털어놓으련다.

  답장에서

  털어놓으련다.

 

 

 

 

  Addition I

 

                                                                         Marc Chagall(1887-1985)_"Mother at the Oven"

          (1914. Oil on cardboard mounted on canvas. Dimensions: unknown. Private collection.)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Sergei Aleksandrovich Yesenin, 1895-1925):

 러시아 랴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남. 1922년 프랑스 파리에서 18년 연상인 이사도라 던컨과 결혼.

 1925년 크리스마스 전전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여관에서 손목을 긋고, 그 피로 마지막 시

 <안녕, 벗이여>를 쓴 후 방 천장 온열(보일러) 파이프에 목을 매닮.

 

 

 

 

  Addition II

 

                                       Yesenin in coffin_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어머니 왈,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