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참맛은 혼자서 즐기는 것: 몰입형
혼자서 마시기를 즐겨하는 몰입형도 있다. 몰입형은 차에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내면으로 깊이 심취하는 유형으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차의 색(色), 향(香), 미(味), 형(形) 등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즐기고 혹은 보다 더 고원한 정신적 측면에 심취하기도 한다. 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그 다양한 차들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의 특징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차의 맛과 향의 차이는 물론 차나무가 어디서 자라났는지, 어떤 품종의 찻잎인지, 가공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차가 어디에서 유통되고 보관되었는지 등 차의 전반적인 사항을 단지 오감(五感)만으로 알아차린다. 비록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특징의 차이를 찾아내기 힘든 매우 비슷한 차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판이하게 다른 차로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차의 섬세한 매력들은 그들이 더욱 차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초의선사가 보내준 차에 대하여 다음부터는 차가 타지 않도록 불 살피기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추사의 차에 대한 미감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알 수 있다.
옛 선인들 중에는 차의 정신적 측면에 집중한 사람들이 많다. 고려말의 충신으로 이름난 정몽주는 <돌솥에 차 달이며(石鼎煎茶)>라는 제목의 시에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 못한 늙은 서생이 차 마시는 일로 세상을 잊는구나. 눈보라 세찬 밤 그윽한 서재에 홀로 누워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듣네” 라고 차를 마시며 느끼는 감회를 표현했다.
우리나라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조선후기의 선승 초의선사(草衣禪師, 의순, 1786~1866)는 [다신전(茶神傳)]에서 차를 마시는 법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주위가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아취(雅趣: 우아한 정취)가 사라진다.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神), 둘이 마시면 좋은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勝), 서너 명은 즐겁고 유쾌하다(趣). 대여섯은 평범하고 구속받지 않으며(泛) 일곱 여덟명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施)'라고 하였다(飮茶之法 客衆則喧 喧則雅趣索然 獨啜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也).” 그만큼 혼자 마시는 차를 귀히 여겼으며 사람이 많으면 정신이 분산되어 차의 참맛을 즐기기 어렵다고 여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