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차폭동" : 1773년에 영국은 애담스와 그 동조자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는 쟁점을 안겨주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동인도회사는 재정적으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자 영국정부에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영국정부는 이 회사에 대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에 수출되는 모든 茶에 독점권을 부여했다. 영국정부는 또한 동인도회사로 하여금 지금까지 차를 팔아왔던 식민지의 도매업자를 거치지 않고 소매업자들에게 직접 공급할 수있도록 했다.
1770년 이후 불법 무역이 극도로 성행하여 아메리카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茶는 불법으로, 관세를 물지 않고 밀수입되는 외국산이었다. 그래서 동인도회사는 차를 자체의 대리점을 통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밀수를 해도 이문이 없게 만들었으며, 그래서 식민지의 자영상인들은 제거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茶 무역을 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독점적 관행에 경각심을 일으킨 식민지의 무역업자들은 독립을 선동하는 급진주의자들에 합세했다.
대서양 연안의 항구에서 동인도회사의 대리인들은 사직하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고, 새로 실어오는 茶는 영국으로 반송되거나 창고에 넣어놓고 팔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는 회사의 대리인들이 영국왕이 임명한 지사의 지원을 받아 식민지 사람들의 압력을 무시하고, 그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오는 화물을 육지로 하역시킬 준비를 했다. 1773년 12월 16일 밤 모호크 인디언으로 변장을 한 일단의 사람들이 새뮤얼 애담스의 지휘 하에 보스턴 항구에 정박중이던 영국 상선에 승선하여 거기에 실려 있던 茶를 바다로 내던져버렸다.
그들은 만약 이 차가 육지로 하역될 경우, 식민지 사람들이 사실상 차세를 받아들여 그 차를 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러한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애담스와 그가 이끄는 급진주의자들은 식민지사람들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영국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는 의회의 한 법규를 실행에 옮겼다. 만약 茶를 파괴한 행동을 벌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갈 경우 의회는 세계에 대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해 통제권을 갖기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결과가 될 것이었다. 영국 당국의 공적의견은 거의 만장일치로 보스턴 차 폭동을 야만행위로 규탄하고, 모반하는 식민지인들을 다스리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행위는 반감되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이 사건이후 커피는 전세계음료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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