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神을 건강하게/삶의 역사

중국 총리 - 주은래 6無의 삶(동북공정 부정)

하늘벗삼아 2012. 8. 1. 11:28



 

 

주은래 총리
 
첫째, 저우 총리는 사망 후 유골을 남기지 않았다.
 
유언에 ‘재 한줌 남기지 말라’고 해서 화장 후 유족들이 유골을 비행기에 싣고
보하이(渤海)만 상공에 뿌렸다고 한다.
사불유회(死不留灰).
 
둘째, 살아서 후손을 두지 않았다.
 
생이무후(生而無後).
중국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효는 無子息’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문화혁명기간 중 부모를 잃은 동지의 자녀들을 양자로 삼아 키웠는데
그 중 리펑은 총리를 지냈다고 한다.
 
셋째, 관직에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27년간(1949~1976)이나 총리를 지냈지만
겸손하고 청렴하여 권력자로 행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이부현(官而不顯)이다.
 
넷째, 당을 조직했어도 사조직은 꾸리지 않았다.
 
당이불사(黨而不私).
누구와 한 번도 당파를 이루지 않아 ‘無黨派 정치인’이였다는 것이다.
 
다섯째, 고생을 해도 원망하지 않았다.
 
즉 남의 탓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것이다.
노이무원(勞而無怨)이다.
 
여섯째,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아 정치풍파를 막았다.
 
사불유언(死不留言)이다 
저우(周恩來) 총리는 외빈과 만찬이 있으면
먼저 주방을 찾아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먹곤 했다.
자신의 배가 고프면 손님 챙기는 데 소홀할까 우려해서다.
그의 외교가 배려의 외교로 불리는 이유다.
 
저우언라이 총리란?
 
저우언라이(周恩來 : 1898~1976)는 중국의 문화혁명시기에 혁명가이며
정치지도자, 사회주의운동가로서 주석 마우쩌둥(모택동)을 보좌하며
1대 총리로 27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공산당 창당 90주년이 지나고 사망한지 35년이나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은
저우언라이(주은래) 전 총리를 잊지 못하고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생전에 그의 지나온 ‘6無’ 생애에 대해 지금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를 만났던 인사들은 그와 대화를 나눌 때는 마치 孔子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고
우아함과 높은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며 칭송했다고 한다.
공산국가에도 그처럼 훌륭한 인물이 있었다니,
아무리 공산국가일망정 귀담아 들을 것은 들어야 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한반도와 관련해 흥미 있는 것은 그가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이른바 ‘東北工程’을 시도하던 중국사회과학원을 경고하였으며
역사 침공행위를 자랑삼는 중국 國粹主義자들을 질타했다는 것이다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