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섹스에 대한 기억 /김나영
온 동네가 가난을 식구처럼 껴안고 살던 시절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심부름을 다녔다.
우리 집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일수(日收),
월곡동을 지나 장위동을 거쳐 숭인동까지
카시오페아좌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다섯 집을 다 돌면
일수 수첩 사이에서 돈의 두께가 부풀어 오르고
내 가슴에 도장밥 빛깔의 별들이 철없이 떠올랐다.
일수 수첩 속에는 각각 다른 여러 겹의 삶들이
붉은 도장의 얼굴을 하고 칙칙하게 접혀져 있었다.
어느 날 추위를 툭툭 차며 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갔다 왔니?' 하던 엄마의 이마에 송송
맺혀있던 땀방울과 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파도처럼 널브러진 이불, 들킨 건 나였다.
아무 것도 못 본 척 문을 닫고 나오던 내 뒤통수를
쌔리며
사춘기는 내게로 다급하게 휘어들었다.
삼십 대 후반의 젊은 부모에게
꼭 묶어두어도 터져나오던,
때론 밥 생각보다 더 절박했을,
한 끼의 섹스가 가난한
이불 위에
일수 도장으로 찍혀있던, 겨울 그 단칸방.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 심부름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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