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삶에도 과학은 더없이 소중하다. 구들을 놓거나 간단한 화덕을 만들 때 주먹구구식을 넘어 좀더 과학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얼마 전 ‘로켓스토브(Rocket Stove)’라는 걸 알았다. 나무로 불을 피울 때 열을 집중시켜 적은 땔감으로 열효율을 높여주는 화덕이다.
이게 화력이 어찌나 좋은지, 직접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연기가 거의 나지 않고, 땔감이 아주 적게 들 뿐 아니라 잔가지만으로도 불길이 좋다. 과학의 힘이란 정말 놀랍다.
내가 이를 알게 된 건 전남 장흥으로 귀농한 김성원(43) 씨 덕이다. 김씨는 이전에 ‘에너지전환’ 간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자립하는 기술에 관심이 많다. 올 초에는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 집’이라는 책을 지었고, ‘흙부대 건축 네트워크’라는 인터넷 카페도 운영한다.
거꾸로 타는 나무, 머릿속 채운 의문들
태양광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체에너지는 개인이 어찌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돈도 기술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로켓스토브는 눈으로 보는 순간, 누구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뭐든 그렇지만 처음 시도할 때는 관련 공부를 하게 된다. 로켓스토브 관련 유튜브 동영상도 참고하면서 많은 걸 새로이 배운다. 로켓스토브에는 몇 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첫째가 불꽃 집중이다. 불이 타는 끝부분을 모아주는 것이다. 둘째는 화덕 둘레 단열이다. 불이 붙고 나면 그 열은 빠르게 둘레로 흩어진다. 이를 최대한 막아 한곳으로 집중해주면 열효율도 좋아지고, 그만큼 불도 잘 탄다. 셋째는 화구와 솥이 걸리는 연소연통의 높이 차이를 두어 불길이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위 세 가지는 중학생 과학 수준이다. 실제 현장에 맞게 적용하려면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어떻게 불꽃을 집중시킬 것인가. 보통 구들방 아궁이 같은 곳에는 땔감을 옆으로 누여 수평으로 넣는다. 그럼 나무가 타면서 불꽃 끝점이 제각각이 되고 나중에 땔감을 더 넣다 보면 연기가 많이 난다. 로켓스토브는 사진에서 보듯 땔감을 위에서 아래로 세워 넣는다. 그러면 나무가 아래부터 거꾸로 타면서 잉걸불이 한자리에 계속 모이니 불꽃 끝점이 자연스럽게 모아진다.
그럼 ‘어떻게 나무가 거꾸로 타는가?’ 하는 의문이 다시 든다. 이는 세 번째 원리와 관련이 있다. 화구보다 연소연통을 높게 하면 된다. 처음 불을 붙일 때만 연소연통 아래로 불을 살짝 밀어넣으면 열이 위로 솟는다. 덩달아 화구로는 새로운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이 흐름에 따라 불꽃 역시 화구 위로 솟지 않고 연소연통 안으로 계속 빨려든다. 그러니 나무를 세워 넣어도 잘 탄다. 그것도 로켓 불꽃처럼 강렬하게.
그럼 다시 의문이 든다. 화구 크기는 어느 정도이고, 연소연통의 크기와 높이는 얼마일 때 가장 효율이 좋을까. 일반적으로 화구와 연소연통 크기는 가로세로 12cm 정도가 좋다 한다. 연소연통의 높이는 높을수록 불을 빨아들이는 힘이 크지만 적절한 높이는 화구 크기의 3배쯤.
과학이 가미된 불놀이와 새로운 구상
이 정도 원리가 이해되자 이제 간단한 실습. 먼저 벽돌을 스무 장쯤 구해다가 아이들 장난감 블록처럼 쌓기만 했다. 과연 어찌 될까. 가슴이 뛰었다. 신문지에 불을 지펴 연소연통으로 밀어넣으니 잘 탔다. 이어서 솔가리와 작은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점차 굵은 가지를 넣어 불꽃을 강하게 했다. 참 재미있었다. 애들 불장난 저리 가라다. 과학이 가미된 불놀이라고 할까.
게다가 불을 지피는 것을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니 편했다. 이렇게 불을 피운 김에 식구들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식사했다. 나름 근사한 가든파티. 그리고는 곧장 고정된 구조물을 만들었다. 기본 구조는 그림에서 보듯 ‘J자’ 모양. 크기는 지름 50cm 가마솥을 기준으로 했기에 화구를 16cm, 연소연통 높이는 그 3배인 50cm로 했다. 그 다음 이게 잘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일을 해보았다.
그 결과 땔감이 예전의 절반 정도밖에 안 드니 에너지 절약이 돼 좋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가스 사용이 여러모로 더 편하다. 그렇다면 어떤 때 로켓스토브만의 쓸모가 있을까. 삶을 좀더 쾌적하고 신나게 하는 데 보조 수단이 된다. 이를테면 냄새나는 생선을 굽거나 기름이 사방으로 튀는 고기를 구울 때, 또는 빨래를 삶아 냄새가 날 때엔 집 밖에서 로켓스토브로 하면 좋다.
또 불을 오래 지펴야 하는 일. 도토리묵을 쑤거나 조청을 달이는 일들이다. 이런 일은 지루하기 쉬운데 로켓스토브로는 틈틈이 불을 때가면서 하니까 변화가 많아 좋다. 또한 명절이나 잔칫날처럼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치를 때도 그만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신기해한다. 이렇게 로켓스토브를 설치하고 조금씩 삶에 이용하다 보니 자연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점점 흥미롭다.
공기, 기압, 열, 온도, 빛…. 그 하나하나가 알면 알수록 매력 덩어리다. 그 과정에서 재미와 뿌듯함, 호기심이 서로 뒤엉켜 다시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간다. 무엇보다 열이 솥을 달구고 난 뒤 그냥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아깝다. 이를 좀더 살리면 좋겠다. 또 구들과 벽난로에도 로켓스토브 원리를 접목하면 어떨까. 아니면 구들침대도 가능하리라.
로켓스토브의 또 다른 매력은 굵은 장작보다 작은 나뭇가지를 땐다는 거다. 나중에 나이 들어 근력이 떨어지는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운동 삼아 마른 나뭇가지 주워 땔감으로 쓸 수 있으리라. 로켓스토브와 함께하는 노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