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神을 건강하게/삶의 흔적

중국의 4대 미인....

하늘벗삼아 2013. 11. 6. 08:30



중국 고대 소설 중에 자주 「침어낙안(浸魚落雁)의 용모, 폐월수화(閉月羞花)의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형용한다.
 
원래 침어(浸魚), 낙안(落雁), 폐월(閉月), 수화(羞花) 는 고대의 사대미인 즉 서시(西施),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 말이다. 각각의 칭호에는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1. 침어(浸魚) -서시(西施)

   개울가에서 손수건을 씻는 서시를 보자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고 물속에 가라앉다.

  

                                               西施綄纱 

 

 

서시(西施) 중국의 유명한 고대 중국 4 미녀로,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중국에서는 서자(西子)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경(춘추전국시대 말기) 사람이다. 현재의 저장 사오싱(紹興) 근처(현재의 주지 (諸曁市)) 출신이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나라 구천의 참모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의 처리에 대한 공물로 오나라 부차의 여인이 된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나라 경계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국력을 키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된다.

 나라가 패망한 뒤의 서시는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고 한다.

 

 

2.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

  집떠나 고향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와서 금()을 탔다왕소군의  () 소리를 듣고 한무리의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昭君出塞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單于) 알씨(선우의 ),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 출전은 한서)이다. 성을 ,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 () 피하여 명비(明妃), 왕명군(王明君)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형주 남군(현재의 호북성 사시) 출신으로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고대 중국 사대 미인의 사람에 손꼽힌다.

      전한의 원제 시대, 흉노의 호한야 선우 한나라의 여성을 알씨(흉노의 말로 군주의 ) 달라고 , 왕소군이 선택되어 그의 장남을 낳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변방의 세력을 달래기 위해 보냈다는 설도 있다.) 이후 호한야 선우가 사망하자, 당시 흉노의 관습대로 아들 복주누약제 선우의 처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 한족은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꺼려하여, 이것이 왕소군의 비극으로 민간에 전승되었다. 황량한 초원지대가 대부분이었던 흉노의 땅에서, 왕소군은 다시는 돌아갈 없는 고향땅을 그리며 시를 남겼는데, 시구 중에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구절은 흉노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고향 땅의 봄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 나타나 있다. 지금도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리움의 인용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을 얻어 돌무덤에 안장되었는데, 사람들은 무덤을 일컬어 소군묘(昭君墓) 혹은 청총(靑塚)이라고 부른다

 

 

3. 폐월(閉月) -초선(貂蟬)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웠다. 이에 서시의 양부인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고 하였다.

                                     

                                         <貂蝉拜月> 

 

초선(貂蟬)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 미인 가운데 사람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염문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4.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양귀비가 화원에 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그녀의 '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에 찬탄하고는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이라고 칭했다.

 

 

 

양귀비(楊貴妃, 719 ~ 756)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양귀비의 이름은 양옥환(楊玉環)이며, 735년 현종과 무혜비(武惠妃)의 아들인 제18왕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 17세 때 궁궐에 들어온다. 뛰어난 시와 노래에 능한 예술가였던 그는 740년 환관 고력사의 소개로 만난 현종의 눈에 들게 된다. 현종은 그녀를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켜 수왕에게서 빼내고, 궁안의 도교사원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다시 이곳을 관리하는 여관(女冠)으로 불러 들인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22, 현종은 57세였다.

 

745년 양옥환이 27세에 귀비가 되면서, 당나라는 서서히 끝자락을 달리게 된다. 당 현종 초기에는 개원의 치를 이룩할 정도로 어진 정치를 하였지만, 양귀비의 등장이후 양귀비 일가의 전횡이 시작되면서, 당나라는 점점 힘을 잃게 된다. 양귀비의 세 오빠에게 모두 높은 벼슬을 주었고, 세명의 언니들 모두를 국부인에 책명할 정도로 그녀를 총애하였다. 그 중 양귀비의 사촌 오빠인 양소는 현종에게 '국충'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라 국정을 전횡한 인물로 환관 고력사와 담합하여 당 현종을 정치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한다.

 

747년 절도사 안록산이 등장하여, 양귀비는 그와 친해지게 된다.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에 위기를 느낀 양국충은 견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안사의 난이 일어나 당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중국사람들이 표현이 뻥은 좀 있어도...  아주 운치있게  표현했어요 

침어(浸魚) : 고기가  아름다움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있고 가라 앉았다..

낙안(落雁) : 기러기가 날아가다가 그녀의 () 소리를 듣고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

폐월(閉月) :  달이 부끄러워서  구름뒤로 숨었다....

수화(羞花) : 꽃이 부끄러워 그잎을 말아 올렸다.(당 현종이 아부한 말이지만.....)  참 잼있어요....

이중에서 3번째   폐월(閉月) -초선(貂蟬)은 삼국지에 등장하며 꾸며진이야기 이지만 나머지 3명은 실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요즘사람들도 이런 운치와 여유가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