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일본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고교 역사 교과서에 간토(關東)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해 공분을 사는 가운데 '조선인 학살 사건' 당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공개됐다.
기록사진 연구가인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3일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사진 윗부분에는 '大正 十二年 九月一日(다이쇼 12년 9월 1일)'이라고 날짜가 분명하게 적혀 있다.
다이쇼는 요시히토(嘉仁) 일왕의 연호로, 다이쇼 12년 9월 1일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9월 1일이다. 요시히토 일왕은 1912년(다이쇼 1년)부터 1926년(다이쇼 15년)까지 재위에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사진 속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나열돼 있으며 시신의 하의가 벗겨져 있다. 시신 옆에는 남성들이 죽창 또는 쇠꼬챙이로 보이는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서 있다.
정성길 명예박물관장은 "개가 죽어도 비석을 세울 정도로 장례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사람이면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하의를 벗겼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여성 시신만 골라 하의를 벗겨 또 한 번 욕을 보인 것은 학살을 능가하는 만행의 극치"라고 분개했다.
정 명예박물관장은 "죽창, 쇠꼬챙이로 보이는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있는 남성들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자행한) 일본자경단(自警團)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부패한 시신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서너해 전 일본에서 이 사진을 입수한 정 명예박물관장은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여성들의 하의가 벗겨져 있는 등 참혹하고 수치스러워서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일본 교과서에 학살이라는 표현을 없애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공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역사지만 학살로 희생된 6천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의 영혼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면서 "사진 등 입증 자료를 제시해 과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주저 없이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자체 발행하는 고교 일본사 부교재 '에도에서 도쿄로'에 기술된 "대지진의 혼란 와중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라는 문장을 내년부터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석에는 대지진의 와중에 '조선인이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적혀 있다"로 바꾸기로 했다.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학살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표현을 바꾸기로 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가 2008년 간토대지진 관련 보고서에서 유언비어에 의한 살상 사건 대상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며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사례가 많았다"고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야마다 쇼지 릿쿄대 명예교수도 "잔혹한 사실을 직시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역사로부터 배울 수 없다"며 "교육 현장에서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정부는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의 간토대지진이 발생하자 흉흉해진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집어넣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에 흥분한 일본인들이 재일 조선인 2천600-6천600여 명을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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