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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분해와 조립중인 대학생들, 1980년대[출처] 총기분해와 조립중인 대학생들, 1980년대|작성자 현대사스토리텔러

하늘벗삼아 2019. 12. 10. 08:54


                                

교련교육의 모체는 1949년 자유당 정권이 학원통제와 학생 동원을 위해 만든 학도호국단이었다. 그리고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1968년 1.21 김신조 사태을 거치면서 현역병들은 군생활이 자동으로 최대 6개월 연장되었고, 학생들에게도 군사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1969년부터 고교 필수 과목으로 부활한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 징발 및 훈련이 교련 과목의 모체에 해당되며 전후에도 유사시에 고등학생들이 병력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목이다. 때문에 교련 교사는 다른 과목과는 달리 전현직 위관급 장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975년에는 학도호국단이 부활하였다. 1989년부터 제5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서서히 폐지수순을 밟으면서 1994년부터 구급법으로 대체되고 이후 선택과목으로 변하다 2007년까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재학중인 일반 학생들에게 실시된 군사관련 교육 훈련 과목이다.

대학교 교련

문무대(文武臺)와 전방입소 훈련. 훈련을 받는 육군학생군사학교의 별칭이 문무대였던 탓에, 대학 교련이란 말보다 문무대 훈련이란 말로 더 유명하다.

대학교에서도 3학점으로 비슷했으며, 1970년대엔 군필자 포함, 이후엔 군입대 예정자에 한해 필수과목이었다.

즉 신체검사에서 제2국민역이나 면제 판정을 받았다든지, 여자라든지, 이미 군대 갔다 왔다든지 하는 경우는 교련 이수 대상자가 아니었다. 대학교 때 교련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교련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강제 입영되기도 했다.

운동권 학생들은 교련을 독재정권의 학생통제수단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거부하다가 단체로 강제 입영된 경우도 많았다

문무대나 전방입소 훈련을 받는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학교 총장이 해당 육군 부대를 방문하곤 했다. 특히 지거국 총장의 경우 사단본부에 4성기가 게양되고, 군악대는 장성에 대한 경례를 육군 4성장군에 맞게 연주했다.

4성장군처럼, 대학교 총장은 사단장의 영접을 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했다. 대학교 총장이 아니라 참모총장인듯 지방 거점 국립대 및 종합 국립대 총장의 의전은 무려 장관급, 즉 군인에 대응하면 실제 대장 계급에 상당하기에 저런 대접을 한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 남학생들은, 성남에 있는 육군학생중앙군사학교에 70년대에는 9박 10일, 80년대에는 5박 6일 동안 소집되어 군사 훈련을 받았다. 입소하는 남학생들을 위해서 여학생들이 초콜릿, 사탕, 담배 등을 선물로 주곤 했다. 교련복을 입고 입소하여, 군복으로 갈아입고 얼차려부터 시작해 짧은 기간내에 유격, 총검술, 화생방 등 군사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일과시간이 무척 빡빡했다.

대학교 2학년 남학생들이 전방의 육군 부대로 5박6일간 입영하여 군사훈련을 받는 제도. 88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