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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북궁 굴뚝 조부자 굴뚝

하늘벗삼아 2012. 8. 12. 10:48

온돌방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아궁이와 굴뚝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굴뚝을 통해 나간다. 서양식 건물에서도 흔하게 보는 굴뚝.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도 늑대가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에도 서양 이야기에는 굴뚝을 타고 들어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걸 보면 굴뚝 입구가 꽤 넓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네 온돌의 굴뚝은 넓지가 않다. 집 뒷켠에 연기가 빠지도록 지은 굴뚝,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 용도의 건축물. 그져 연기만 잘빠지면 되려니 생각할 수 있으련만, 궁궐에서 보는 굴뚝은 마치 조각품을 보는 듯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가장 유명한 굴뚝이 경복궁의 교태전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이다.

따로 보물로 지정되었을 만큼 아름답다.


아미산 굴뚝


왕비가 머물렀던 교태전 구중궁궐(九重宮闕) 속, 밖으로 함부로 나가지도 못하는 여인들을 위해 후원에 자그마한 정원을 가꿔주었는데, 교태전의 뒤뜰에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계단식 정원이 아미산이다. 그 아미산 계단에 벽돌을 쌓아올린 작은 굴뚝이 네 동이 있다. 벽면마다 꽃과 글자로 문양을 새겨넣고 굴뚝의 지붕은 네 개의 창구멍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와로 얹었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또 하나가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 자경전의 의미는 왕실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위한 공간이다. 고종이 양어머니인 신정왕후 조대비를 위해 지었다는 궁궐인데, 궁궐 뒤뜰 담장에 붙어있는 굴뚝은 굴뚝이라기 보다는 벽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십장생 등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여러 가지 생물들을 조각해놓았다.



교태전과 자경전은 여인들을 위한 공간답게 담장이 오렌지 빛 벽돌과 문양으로 아기자기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경복궁 자경전



후원으로 통하는 교태전 뒷문





그렇다면 왕이 머물렀던 공간에도 필시 굴뚝이 있을 터인데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강녕전을 가보았다. 역시 왕의 공간답게 가볍지 않으면서 기품있어 보인다. 이 역시 뒷 담장에 붙어있어 담장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지, 결코 굴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녕전에서 교태전으로 통하는 문 양쪽에 기둥처럼 서있다.


강녕전 굴뚝


궁금증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모든 온돌방의 굴뚝이 궁금해진다. 침전인 강녕전 주변에 4채의 부속 건물이 있는데, 동쪽 뒤편에 있는 연길당의 굴뚝은 강녕전의 굴뚝과 나란히 담장에 기대어 있다. 크기도 작고 별다른 문양도 없이 평범하다.



강녕전 굴뚝과 나란히 서있는 연길당 굴뚝




그런데 연길당 옆에 있는 연생전의 경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굴뚝이 보이질 않는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굴뚝을 찾아 헤매다가 문밖으로 나가봤더니 굴뚝이 담장 밖으로 나있다. 굴뚝의 또 다른 배치이다. 건물의 뒤편 담장 안쪽으로 굴뚝을 내더니 이번에는 담장 밖으로 굴뚝을 내었다. 이 역시 굴뚝인지 담장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연생전 굴뚝 역시 모양은 평범한데 그 위치를 발견한 것이 너무 흐뭇하기만 하다. 연생전 담너머로 멀리 백악이 보인다.



강녕전 연생전 굴뚝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은 마루바닥이라 굴뚝이 있을리 없고 양쪽에 있는 만춘전과 천추전은 온돌이니 건물 뒤편에 훤하게 굴뚝이 세워져 있다. 지금까지 숨바꼭질 하듯 숨겨져 있는 굴뚝과 달리 “굴뚝 여기 있소” 하듯이 티나게 굴뚝이 세워져 있다. 검은 벽돌을 쌓아올린 굴뚝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굴뚝이다. 경회루 앞에 있는 수정전 굴뚝도 이 모양을 하고 있다. 수정전을 고종은 편전으로도 사용하였다 하니, 아마도 편전의 굴뚝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을까?



천추전 굴뚝

수정전 굴뚝



경회루에서 다시 침전 강녕전으로 들어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굴뚝이 있었으니... 강녕전을 둘러싼 행각을 들여다보니,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내시나 신하들이 업무를 보았던 공간인 것 같다. 그런데 그역시 온돌방이니 굴뚝이 있을터인데, 행각 밖으로 경회루와의 사이에 또다른 담장이 놓여져 있는데, 그 담장 안쪽으로 담장에 붙은 굴뚝이 있었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뿌듯하기만 하다. 교태전과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라 새것인데, 이곳의 굴뚝은 정말 굴뚝답게 좀 지저분하다. 그을린 흔적도 있는 듯하고...


한가지 보너스! 경회루에서 교태전을 가기 전 그 사이에 함원전이란 건물이 있는데, 안내판도 없고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다. 뒤뜰도 교태전처럼 화계가 꾸며져 있고 교태전과 바로 연결된다. 굴뚝도 붉은 벽돌을 사용한 것이 예사롭지 않은 건물인 것 같은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1452년 문종이 승하한 뒤 당시 왕세자인 노산군(단종)이 잠시 이곳에 거처를 정했다는 기록도 있고, 경복궁의 내전 깊숙이 위치해 '불사(佛事)'를 주로 행하던 공간으로 쓰였다고도 한다.

주로 세조때에 궁궐 구석에서 은밀히 불교적인 예식을 행했다고 하는데, 왜 하필 세조 때일까? 추측컨데 조카 단종을 죽인 죄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덕종)와 세조의 꿈에 자주 나타나 괴롭혔다 하니, 아무리 유교사회라 하더라도 왕실의 안위를 위해 어쩔수없이 불공을 드린것이 아닌지... 아뭏든 궁궐 속의 특이한 공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함원전 굴뚝

소설 '토지'의 모델이 되었다는 하동 악양의 조부자 댁 굴뚝입니다.

안채 뒤에 쌍으로 된 굴뚝이 황토 미장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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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목조주택 한옥
글쓴이 : 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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