肉身을 건강하게/건강한 행동

희망의 밥상, 소박한 밥상을 지향하며 - 최근의 구제역 사태와 헝거스트라이크 ( 배고픔에 의한 봉기 )조짐을 보며 몇자 적어봅니다 -(펌)

하늘벗삼아 2015. 7. 9. 00:34




2012.04.10. 글 중에서...

 

 

 

                                              우리 인간은 특권을 누리는 동물이다.

                                              우리는 소의 저녁 식사감이 되지도 않고....

                                              우리 아기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잘려서

                                              누군가의 저녁 식사 재료로 쓰이는 꼴을 당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상의 모든 것에 연민을 갖고

                                              최대한 많은 것에 유익을 주고,

                                              최소한의 것에 해를 끼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헬렌 니어링의  - 소박한 밥상 -  중에서

 

 

최근 들어 저는 텔레비젼과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한 바가 있어 매스컴을 멀리하고 있지만 간간이 비치는 화면을 통해 구제역 사태를 보면서 더욱 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차마 볼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 그 들의 아우성,비명소리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귀을 열고 살아야 하는지, 그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어 보신 분들은 제 심정을 아실 것입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상황이 우리모두의 책임이고 특히 주부들의 각성과 책임이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인 구달 선생님의 - 희망의 밥상 - 에서 발췌하고 헬렌 니어링님의 - 소박한 밥상- 에서 발췌한 글을 적어봅니다. 참고로 제인 구달님은 침팬지 연구자로서 동물을 사랑하다 환경 운동가로 자연스럽게 옮겨가신 분이시고 헬렌 니어링님은 미국의 자연주의자로서 온생애를 자연과 순응하는 삶을 살다 가신분입니다.

 

 

                                            제인 구달의  -  희망의 밥상 -      중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구를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관심을 갖기 시작 했다면 이제는 뭔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독특한 시각을 갖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핍의 시기 ( 제2차 세계대전) 에 성장 했고, 어떤 것도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면서 자랐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충분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침팬지를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숲을 갔고, 그곳에서 내 꿈을 이루며 살았다.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공원에 처음 도착했을때  모든 것이 순수 그 자체인 세계를 발견 했다. 곰비강은 오염에 찌들지 않은 영양이 풍부한 샘으로부터 발원했다. 그 숲에는 인간이 만든 어떠한 화학물질도 침투해 있지 않았다. 탕카니카 호수는 지구상에서 오염되지않은 맑은 물을 담고 있는 가장 큰 호수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차츰 차츰 변해갔다. 곰비 주변의 숲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부룬디와 콩고에서 온 난민들이였다. 한때는 푸르렀던 산 비탈이 헐벗은 채 그대로 노출되었다. 사람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져 갔다.그들은 먹고 살기위해 나무를 찍어쓰러뜨렸고, 땅은 빗물에 씻겨 쓸려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좋은 장비를 가진 외국인들이 나타나 어부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살아갈 수 있게 하였던 구식 낚시법을 방해하기 시작하였고, 탕가니카 호수는 너무나 많은 물고기들을 잃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져 갔고, 점점 더 굶주림에 시달렸다.

 

 탄자니아을 떠나 유럽과 미국에서 강의를 하게된 나는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먹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먹을거리를 사들이고, 또 점점 더 많은 먹을거리를 내버렸다. 내가 방금 떠나온 땅,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굶주려서 죽어 가는데 유럽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죽어갔다.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데 나라고 해서 침팬지의 살길만을 도울 수는 없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침팬지를 돕기 위해서는 곰비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꼭 함께 일해야만 했다.

 

 조금씩, 나는 내가 속하지 않던 집단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빈곤에 대해, 기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세계 곳곳을 멀리까지 여행하면서 나는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절망과 무관심, 그리고 분노를 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인간들이 너무도 쉽게 지구상에서 생명의 종말을 가져 올 수도 있는 있는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들은 합성 화학 물질로 대기와 물, 그리고 땅을 오염 시키고 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오염은 우리가 먹을 식량에 뿌리는 비료와 살충제, 그리고 제초제에 쓰이는 농업용 화학 물질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 화학물질들 중에서 일부는 인간이 인간을 적으로삼는 전쟁에서 쓰기위해 개발된 것들이었다. 나는 또 우리가 식량으로 기르는 동물들을 도저히 용인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대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동정심과 이타심, 그리고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먹을거리를 기르고, 수확하고, 팔고, 사고 준비하고, 먹는 그 모든 행위들이 이 세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또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점도 그에 못지않게 분명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중에 상당수가 건강에 해롭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얻어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난 100년 동안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은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들을 점차 파괴해 버렸다.

 

 한 때는 인간도 동물 및 지구와 훨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스스로 먹을 거리를 채집하고,  원시적인 도구로 견과류의 딱딱한 껍질을 깨고, 사냥에 성공하면 잡은 짐승의 사체를 부분별로 해체하고, 동굴에 모여 나누어 먹었다.

 그러다가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들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였다. 낟알을 거둘때도, 비가 오기전에 풀을 벨때도 모두 합심해서 일했다. 여인네들은 굽고, 끓이고, 볶아서 끼니을 준비했고, 고기를 말리기 위해 천장에 걸거나 젖소를 길러 젖을 짜 그 젖으로 버터와 치즈를 만들었다. 계절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날씨는 곡물의 성장과 수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6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먹을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힘을 행사하며 세계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쟁취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을 보아왔다. 굶주린 사람들으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또는 오늘날의 물질주의적인 도시 엘리트들의 요구( 수요가 아닌) 를 만족시키기 위해 농사 짓는 법이 달라졌다.그 어느때보다도 큰 힘을 지닌 기업들 ( 권력 쟁취과정에서 이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은 정부의 도움으로 더욱 그 힘은 커졌다.) 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한 값싸게 먹을거리를 생산해서 주주들에게 최대의 수익을 안겨 주는 것이다.

 

 우리는 농업용 화학물질로 오염된 땅과, 물, 공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이 병들고 있는, 심지어는 새로운 병이 생겨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열대 우림은 소에게 먹일 옥수수를 기르기 위해 잘려 나간다. 우리의 식탁에 올려지는 동물들은 가장 짧은 시간안에 동물 한 마리당 하루 수익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몸을 움직일 공간도 없이, 생명으로서의 존엄성도 지키지 못한채 사육된다. 몸무게를 최대한 불리기위해, 최대한 많은 젖을 생산하기 위해, 가능한한 많은 알을 낳도록 자연스럽지 못한 먹이를 먹으며 자라는 것이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업들이 세계 곳곳의 농토와 우리가 먹을 식량으로 자라게 될 씨앗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그들은 씨앗이 자라는 방법까지 통제하고 있다. 오염된 광대한 논밭에서 단일 경작으로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업들이 육류의 생산까지 거머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소규모의 자작농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완전히 몰아내려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한때는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주로 팔던 지역 식료품점까지 이러한 다 국적 기업들이 매우 빠른속도로 장악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많은 먹을거리들, 곡물들의 풍부한 다양성 등이 우리의 먹을거리와 문화까지 지배하려는 기업들 때문에 점차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우리와 우리의 땅, 그리고 우리의 먹을거리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장벽은 우리가 음식을 한 입 먹을 때마다 땅이 점점 더 황폐화되고, 사람은 점점 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식료품점에서 반 조리된 냉동식품을 사다 먹거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 먹을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키워지거나 재배되었으며 어떻게 조리되었는지, 어디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 음식들을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그 동네의 식료품점에 진열되기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 왔는지, 그것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투입되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재정적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괴물같이 변해버린 기업들의 탈취를 중단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이 지구의 건강이 주주총회에서의 결정에 좌우되는 이런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대 기업의 탐욕앞에서 인간과 동물이 고통을 당하고 환경은 파괴되어 가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들이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 그만 무기력증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고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저 현상을 되는대로 인정해 버리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라고 큰소리로 말하고자 한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차이를 만든다." 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여러분도 자신이 할 바를 깨닫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할바를 선택하게 되리라는 것도!

 

 골리앗에게 맞섰던 다윗처럼 선두에 서서 거대 기업과 맞서 싸운 아름다운 몇몇의 사람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없다. 그 들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는 살아있는 표본이다. 그들보다 덜 자극적인 길을 택한 수천명의 사람들도 각자의 할일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실망과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이 패스트 푸드 체인점의 음식을 거부하고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사들이고 먹는 음식에 대해, 누구로부터 먹을거리를 살 것인가에 대해 윤리적인 선택을 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먹을거리가 길러지고 준비되는 과정을총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이 책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를 희망한다.

 내가 말하는 중요한 이슈란 지구의 자연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한 문제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 예전처럼 다시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와 가까운 관계을 맺고 먹을거리의 본질과 역사를 이해하며 자연에 가까운 식단을 꾸릴 수 있을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인류역사에서 매우 중대한 시점에 서있다. 기업들이 우리의 먹을거리의 공급을 좌우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앞으로 반세기 안에 우리를 먹여 살릴 모든 식량 자원을 다 먹어 치우거나 아니면 독성 물질에 오염되도록 만들고 말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파괴로만 치닫던 지금까지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변화을 이룰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식습관에 대해 생각 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지구의 환경과 동물들의 편안한 삶,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우리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바라건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리하여 이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할 수있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모든 이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각자가 나누어서 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저질러 놓은 해악들이 자못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들이 즐거운 일이 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또한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져다 주리리라고 믿는다. 함께 손을 맞잡고 가슴을 열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조그만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거두어들일 수확물은 진정으로 ' 희망을 위한 수확' 이 될 것이다.

 

 

 

                                      헬렌 니어링의  - 소박한 밥상 -  중에서

 

소박한 음식을 다룬 이 책은 물론 채식을 골자로 한다. 채식이야말로 가장 간단하고 깨끗하고 쉬운 식사법이다.

나는 식물과 과실, 씨앗, 견과를 먹고 사는 것이 이성적이고 친절하며 지각있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소박한 생활방식으로 회귀할 즈음에는 식사법에서 육식은 제외될 것이고 잔인 할정도로 비싼 식비는 ' 육식 동물' 이나 감당하게 될 것이다. 채식주의야말로 타당성 있는 식이요법임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하지만 내 말이 야만적인 관습에 오래도록 길들여진 일반 대중에게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알고있다.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살점을 볼때 겁에 질리고 메스껍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육식은 관습이 되어버렸고 지각있는 사람들은 동정심을 뭉개버렸다. 사람들의 미각은 비정상적으로 타락했으며, 죽은 음식의 맛과 냄새에 대한 취향이 자리잡게 되었다. 도축된 동물을 먹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뭘 먹어야 할지 상상조차 못한다. 그들은 원래 야채를 먹어야 하는데 그 대용으로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썩은 시체가 아닌 풍부한 영양을 주는 먹을거리를 충분히 인간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썩고있는 시체를 먹는 것은 정결한 사람이라면 혐오할 만한 불쾌한 식사법이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그것이 관습으로 자리잡아, 사람들의 뱃속을 죽은 동물의 무덤으로 만드는 기괴한 짓이 몸에 배긴 했지만.

 채식인이란 낱말은 ' 온전한, 건강한, 싱싱한, 살아있는' 이라는 뜻의 라틴어 ' 베게투스' 에서 파생되었다.

푸른잎 채소와 근채류, 곡물, 열매, 견과, 과일로 구성된 식단은 신체에 힘과 안정을 가져다 준다. 그 것이 건강한 음식이고, 미학적이고, 경제적이며, 동물들에게 무해하고, 경작과 준비와 소화가 쉬운 식단이다.  

 인간의 육식은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며, 해부학적으로 불완전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비 위생적이며, 비경제적이며, 미학적이지 않고, 무자비하며, 비윤리적이다.

 

 동물에게도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권리가 있다. 동물도 자기 삶과 가족을 사랑한다. 인간은 동정심이라고는 없이 야생동물을 잔인하게 사냥해서 죽인다. 도살장에 간 동물은 다른 가축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공포감에 얼어붙는다. 또 다른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악취에 놀란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며 잔인 할 수밖에 없다.

 닭,소를 비롯한 가축은 보호받으며 살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산다. 살고 죽는 것이 완전히 인간의 손에 달린채 사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특히 그들의 죽음에 참여하는 우리는 윤리적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육식습관을 버리고 채식을 한다해도, 우리가 생명체를 꺾어서 삼키고 소화하게 된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식사할때 무, 당근, 상추, 사과, 오렌지에게 사과한다. 어느날엔가 우리가 피부에 햇빛을 받고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역시 생명 형태의 미립자를 삼키는 것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 했다. 그러므로 덜 민감한 생명체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먹을거리는 어떤것이든 본래 생명을 갖고 태여났다. 그러므로 사과든, 토마토든, 풀 한포기든 먹으려면 그것을 죽여야한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자연의 경이를 소비할까? 식물은 땅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나는 나무를 자를 때면 나무에게 인사를 보낸다. 데이지나 팬지꽃을 뽑을때나 사과나 무를 깨물때면 내 마음은 오그라든다. 내가 뭐길래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단 말인가?

 

 우리는 지상의 모든 것에 연민을 갖고, 최대한 많은 것에 유익을 주고, 최소한의 것에 해를 끼치도록 노력해야한다.

 

 

 

 

2011년 2월 6일 자 조선일보 14면에는 ' 식량가격 급등.. 헝거스트라이크' 조짐 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세계 주요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품가격이 단지 인플레 뿐만 아니라 ' 배고픔에 의한 봉기' 를 불러오는 글로벌 불안정 요인으로 비화될 수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개도국이나 후진국에서 한마디로 배고파서 쿠데타나 민중 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서 세계 정치, 경제 요인이 불안정해진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주부들이 요즘 심각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식품가격 오름세입니다. 말도 못하게 식품가격이 올랐습니다. 기초 생활식품비가 이렇게 심각하게 오르면 그래도 중산층이라 자부하는 우리가 불안 할진대 서민이나 최하위계층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할말도 많지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식품가격 안정입니다. 그리고 우리주부들이 할일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성찰하여 우리부터 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식탁부터 점검하여 불필요한 육식을 삼가고 채식으로 돌아가 자연을 살리고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여 우리와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된 모든 생명체을 존중하고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므로써  우리에게 닥칠 재앙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 조금있으면 사순시기인데 모든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하여 하루 한끼 금식 금육함으로써 우리의 정신도 맑게하

      고 환경운동에 동참하는 일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에 금식하면 그다음날 아침에 정신이 아주 맑아집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조화순 목사님의 - 낮추고 사는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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