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발전소/Thinker 사색의 날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하늘벗삼아 2015. 3. 24. 16:30

경제에 관심 많은 여러분이라면 한 번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에 대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사다리 걷어차기>는 캠브리지대학교 장하준 교수가 쓴 책으로 출판 당시 상당한 이슈를 끌었던 책입니다.

 

 

그 이유는 책에서 드러난 그의 주장이 기존 경제학의 주류 이론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에 반하는 행동경제학에 대해 포스팅 했는데...

저는 이처럼 정석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럼 오늘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나타난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1963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2002년에 출간한 <Kicking away the ladder(사다리 걷어차기)>

당시 주류적 경제 이론으로 제시되었던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박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03년에 유럽정치경제학회에서 뮈르달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Kicking away the ladder>는 2004년에 우리나라에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가 2007년에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어 오히려 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그의 수많은 저서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신고전학파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올해 1월에는 수감 중인 재벌 총수를 사면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하여 정당성과 효과가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맹목적으로 성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식으로 선진국들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정책은

제한적인 거시 경제 정책, 국제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 민영화와 규제의 폐지 등을

기반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이념을 개발도상국들에게도 그대로 강요(혹은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과거 선진국들이 경제발전을 할 때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세계 GDP 지도>

 

 

현재 선진국들은 과거 개발도상국이던 '따라잡기 경제' 시절에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일관되게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적극적인 유치산업 보호와 높은 관세,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주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는 현재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정책들이기도 합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제시한 통계 자료를 보면,

실제로 현재 개발도상국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을 사용했던 당시에

경제 발전 속도가 훨씬 빨랐으며 선진국의 강요에 의해 워싱턴 컨센서스 이념을 도입한 이후

경제 발전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경제 지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왜 개발도상국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그들의 '바람직한' 정책을 권유(혹은 강제)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의 이러한 방식이 개발도상국의 따라잡기를 우려한 선진국들의 '앞서나가기' 전략

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바람직한' 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단기간에 그러한 정책을 수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바람직한' 정책으로의 전환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러 경제적 제제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도 책 속에서 종종 언급됩니다.

장하준 교수는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경제 발전이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정부주도의 강력한 개입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엄청난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룬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의 경제 성장을 지켜본 현 선진국들이 더 이상의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잡기 경제의 이점을 이용하여 급속히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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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과거의 선진국과 현재의 개발도상국을 비교할 때,

단순히 1인당 GDP를 산술적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1인당 GDP로 단순 비교한 과거 선진국들과 현 개발도상국들의 비교를

제도와 정책의 측면에서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현 개발도상국들이 현 선진국이 과거 개발도상국이던 시절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장하준 교수 자신도 이렇게 단순한 형태의 비교의 문제점을 책 속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이 갖는 의의는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이 '바람직한' 정책을 시행한 이후

 경제발전의 속도가 더뎌졌다는 지표가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현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 선진국들이 선지자로서의 우위를 가지고 현 개발도상국에 대하여

'사다리 받쳐주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시대에서 경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현 개발도상국들은 제도상으로는 현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보다 질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경제적 능력이 그 제도를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 및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보장제도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간섭을 자제하고 실질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의 제도 및 정책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사다리 받쳐주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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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솔직한 모습인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혹은 더 가난한 국가들에게 권고하는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들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을 통한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인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는 사다리를 밟고 지붕에 올라간 사람이 다음 사람이 올라올 수 없도록 자기가 이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선진국들이 얼마간의 경제 발전을 이룬 후 자신들이 그 과정에서 사용했던 요긴한 방법들을 개발도상국들이 취하고자 할 때 그것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역사적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최초의 근대화된 산업국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 그리고 그 뒤를 좇아 선진국들이 된 미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네델란드 등의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정책과 제도를 통해 선진국이 되었고, 그 이후에 개발도상국들에게 요구하는 제도와 정책의 개선 요구가 자신들의 과거와 얼마나 배치되는 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책은 다양한 사례들과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한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책과 제도들이 등장하고, 법률과 관세 제도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선진국들의 비약적 성장의 역사들에 그것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낱낱히 고발한다. 그런데, 왜 선진국들의 이제와서 그와 같은 정책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왜 자신들이 써왔던 방법들보다 '자유 무역'이 훨씬 더 이롭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많은 사례들의 결론은 하나다.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선진국들과 이들이 조종하는 국제 개발정채그이 주도세력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정책은 개발도상국들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이로운 정책 아닌가? 그 같은 정황은 19세기에 영국이 보호주의를 이용해 자신을 따라 잡으려는 미국과 다른 현재의 선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과 유사한 것 아닌가? 개발도상국의 적극적 산업/무역/기술 정책 실행을 제약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합의는 영국을 비롯한 여타의 현 선진국들이 반 독립 국가들에게 강요하였던 다양한 '불평등 조약'의 현대판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 개발도상국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정상에 오른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이 따라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행히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선진국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들이 취했던 정책과 제도들이 반드시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없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관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들이 선진국들과의 자유 무역을 한다는 것은 위험에 보인다.
             

글쓴이의 목적은 단순히 '사다리 걷어차기'의 현장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선진국들의 역사 속에서 정책과 제도라는 것이 강권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은 개발도상국들을 나락을 떨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보호주의 무역을 허용하고 있을 수 만은 없기도 하다. 관세와 지원 정책과 같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불평등한 무역 관계에서는 선진국들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 가지 대안 중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에게 비교적 비슷하게 유리한 방법을 제안한다.

 

"세 번재 대안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에서 해답을 찾자는 것이다. 앞에서 '바람직한 정책good policy'의 문제를 역사적 측면에서 다룬 것처럼, 제도 발전 분야에서도 선진국들의 근래의 상황이 아닌 역사에서 교휸을 얻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 경우 개발도상국들은 새로운 제도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선진국들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이것은 '후발 산업국'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안 되는 이점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일단 제도가 수립되면 정책보다 변경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이 방법은 특정 제도를 수용하기를 바라는 금융 지원 제공국들에 대한 수혜국들 특유의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정책적 측면에 대해 언급하자면, 대부분의 현 선진국들이 개발을 진행 중이던 시기에 비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던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과 이들이 조정하는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이 - 적극적으로 격려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 양해는 해주어야 한다. 적극적 산업/무역/기술 정책이 때로는 관료적 형식주의나 부정부패로 변질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책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비행의 운항을 중단시키지는 않으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일부 아동들이 사망한다고 해서 모든 백신 프로그램을 파기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지 원리이다."
             

        현재 미국과 FTA를 (서둘러) 체결하고 싶어하는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한 번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아직 확고한 선진국의 지위에 올라서지 못한 우리 나라의(대략 사다리 중간 쯤 올라온 것 같은데) 사다리가 걷어차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은가? FTA 체결에 따라 이익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진행중이고, 나 같은 경제 문외한이 보기에는 어느 쪽이 맞는지 확신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곰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한 것도 같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누가 자기의 손해를 감수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할 것인가? 물론 리스크 대비 소득이 굉장하다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러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나라 정부는 장및빛 전망을 내 놓지만, 그렇게 장및빛이기만 한다면 미국은 왜 FTA를 할려고 하는가? 상호이익? 고등학교 정치/경제 시간에 배운 무역의 동반 이익이 실현될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서로 간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형태여야 할 텐데, 과연 미국과 우리 나라의 산업은 상호 보충적인가? 오히려 날카롭게 경쟁해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 7차 협상을 끝낸 결과를 뉴스로 듣다보면 답답할 뿐이다. 계속해서 많은 부분에서 양보만 거듭하고 있는 우리 협상단들은 어떤 희망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을까? 여전히 무역 구제 정책 등의 여러 가지 보호 장치들을 유지하는 미국에게 나중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압박할 수 없다면 어떤 협상이나 합의도 무의미한 것을...
             

        지은이는 한국어 서문에서 한국에게도 대승적 차원의 모습을 보일 것을 말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라는 어정쩡한 상태의 중간자인 한국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희망의 전도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중간자적 입장을 이용하여 국제 사회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높이려 하는 '대승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익을 위하는 길이다. 우리의 경우 선진국에게는 얼마전까지 후진국이었던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진국의 어려움에 대해 알려 줌으로서 현재도 후진국에 불리하게 되어 있고, 점점 더 이들에게 불리하게 되어 가는 국제 경제 질서를 개선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후진국들에게는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낸 우리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개방을 무조건 두려워하지만 말고 세게화에 동참하되 같이 힘을 합하여 부당한 국제 경제 질서를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자고 권할 수 있다." 하지만 회의적인 건 이기심의 충족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질서에서 이와 같은 이타심이 들어설 공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