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먹거리/씨앗에서 수퍼, 내몸까지

종자독점과 제왕나비 - 다국적 종자기업의 세계 농업 독점욕

하늘벗삼아 2014. 4. 15. 16:43



자연생태 파괴하고 인류공동체 미래에 검은그림자 드리워

   
길이 4㎝ 무게 0.5g에 불과한 나비가 북미대륙을 수개월에 걸쳐 종단한다. 연약한 곤충이 비바람을 뚫고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어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장장 5000㎞를 이동한다고 상상해 보라. 북미에서 여름철을 보내고 겨울이면 따뜻한 멕시코로 남하해 월동하는 제왕나비 이야기다. 이들은 이동기간 중엔 짝짓기를 하지 않고 태양의 고도와 움직임에 따르며, 일정한 경도를 항로로 택해 비행한다. 제왕나비가 살아가는 과정은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이태 전 국내에서도 방영한 제왕나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들의 신비로운 생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에게 경이와 찬탄으로 다가왔던 제왕나비의 개체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한 곤충학 저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이후 무려 40%나 격감했다는 연구보고가 나왔다. 제왕나비의 산란지이자 쉼터이고, 먹잇감인 박주가리가 농업용 제초제 탓에 크게 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다국적 종자기업이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지니도록 개발한 유전자조작(GM) 콩과 옥수수가 대규모로 재배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대평원의 옥수수밭 콩밭의 작물 사이에는 다년생 덩굴식물인 박주가리 천지였지만, 농작물이 제초제 내성 작물로 대체되면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제초제에도 끄덕 없는 유전자조작작물(GMO)이 온 들판을 점령한 뒤 농부들이 마음놓고 농약을 뿌리면서 시작된 비극이다.

문제는 비극이 제왕나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종자독점이 불러온 자연의 비극은 인간의 삶에도 연장된다. 인도의 주요 면화 생산지인 비다르바 지역은 다국적 종자회사가 공급한 GM면화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GM면화 씨앗 구입 부담으로 농민들의 부채가 늘고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재래종 면화씨앗 1㎏에 5루피였던 게 3200루피까지 뛰어올랐다. 기업의 선전처럼 병치레하지 않고 손쉽게 키울 수 있는 '황금의 작물'이 아니라 병해로 수확마저 줄어 끝내는 농민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죽음의 작물이 된 것이다. 농토가 황폐화되고 빚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면화 농부는 지난 10년 새 15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다국적 종자기업의 탐욕스러운 촉수에 희생된 참극이다.

 

 

 

이처럼 GM작물은 농업 생산환경을 급격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생명의 땅을 '농사 공장'으로 전락시키고, 종의 다양성을 파괴해 건강한 대지를 병들게 한다. 다국적 종자기업에 의해 개발된 GM작물이 세계 곳곳에 재배되면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길이2000㎞, 폭 1000㎞에 달하는 미국 대평원의 경우 이들 다국적 종자기업의 몇 개 종자가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왕나비의 삶터인 박주가리를 몰아내는 데 일조한 GM 콩 '라운드업레디'다.

제왕나비와 면화농부의 비극은 다국적 기업의 종자독점 욕망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종자독점이 인류 공동체를 파괴하는 재앙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이미 50개 국에 진출한 세계최대의 종자기업 몬산토는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GM작물 90%의 특허권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새로운 농업질서를 강요한다. 그들은 GM종자 무단사용 혐의로 전 세계 농민을 대상으로 매일 100여 건의 소송을 제기한다. 오랜 세월 농부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온 '인류 공동의 자산'이 한순간 부정당한 것이다.

오늘 우리 밥상에 오른 식품이 다국적 종자기업의 독점욕이 빚은 결과물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담가 먹는 김치, 그 재료인 배추와 고추는 과연 우리 농부들의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국내 종자업체 대부분이 IMF사태 이후 다국적 종자기업으로 넘어갔다. 이는 어느 순간 식량대란, 식품대란의 최전방에 발가벗겨진 채 내몰릴 수 있다는 어두운 예고이기도 하다. 생태계를 보전하는 생물다양성을 외면한 다국적 종자기업이 통제하는 식량공급 시스템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인류가 함께 가꾸고 누려야 할 공동자산 종자를 독점하는 행위는 제왕나비나 면화농부의 비극을 확대할 따름이다.

 

                                                                        국제신문  201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