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6.7세다. 2009년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기대수명은 83.2세이고 남자는 76.5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10일 발표한 ‘세계보건통계 2010’에 따르면 지구인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4세다. 2008년 출생아 기준으로 지구인 남자 기대수명은 66세, 여자는 70세이다.
남녀 기대수명 차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남자 수명을 늘려 노부부가 더 오래도록 여생을 함께 보낼 수는 없을까.
미국 펜실베니아주 북쪽 애미쉬 마을. 19세기에 스위스로부터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사는 이 마을에서는 지금도 마차를 타고 곡괭이질로 농사지으며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마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애미쉬 마을은 남녀 장수도 차이가 거의 없어 ‘할아버지 장수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남성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농사일을 책임지고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은퇴한 후에도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 한국 할아버지들과는 다르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지방도 마찬가지다. 이 지방은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백세인의 남녀 비율이 같은 지역이다. 사르데냐 남성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매일 산에 올라가서 양을 키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최근 '노화혁명'이라는 책을 낸 박상철(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의학과 교수는 애미쉬 마을과 사르데냐 지방 사례를 소개하면서 “남녀 수명이 비슷한 도시에서는 남성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한 신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상철 교수는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쓰는 것이다”며 “이것이 장수의 비결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남녀가 균등하게 장수 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들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부부가 손을 잡고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살다 삶을 마칠 수 있다"며 할아버지들의 노력을 주문했다.
65세부터 할아버지 비율 급속도로 떨어져 ‘외로운 할머니’ 늘어나
통계청의 2009년 인구집계 자료를 분석해 만든 ‘2009년 연령별 성비’ 표를 보면 65세 이후부터 할아버지 비율이 급격히 줄어든다. 할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많은 것이다. 반평생의 반려자를 잃는 슬픔과 허전함은 매우 크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조맹제 교수는 “생물학적인 이유로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더 길지만 남성은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면 현재 기대수명보다 2~3년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수명이 긴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호르몬의 영향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좋은 콜레스테롤을 늘려 심장혈관질환을 예방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수명이 길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심장병을 예방하는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 또 여성은 매월 하는 생리로 체내 철분을 배출해 유해산소 발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렇게 선천적으로도 남성은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가 있지만 남성은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우선 남성의 수명을 단축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흡연과 음주다. 지난해 하반기 성인 남성 흡연율은 43.1%로, 여성 3.9% 보다 10배 이상 높다. 또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소주 7잔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마시는 고위험 음주율은 남자 29%로 여성의 9%에 비해 3배 이상이다.
“할아버지는 대화가 필요해”
남성 노인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외로움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 박 교수는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자살로까지 이어 진다”며 “한국에서 노인 자살이 심각하지만 특히 남성 노인의 자살률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은퇴 후인 65살 이상 남성 노인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12명으로 같은 나이대 여성 노인 44.7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주변에서 살펴봐도 할아버지들은 가정에서 과묵하고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색해 한다. 이런 저런 집안의 대소사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들과는 반대다.
박 교수는 “남성 노인들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가족, 친구와 교류를 늘리며 가족들과의 대화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 활동을 늘리고 요리 운동 악기연주 등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노화고령사회연구소는 중년 이후 남성들이 스스로 조리할 수 있도록 해 독립적인 생활과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요리 강좌인 '골드 쿡' 프로그램을 열었다. 박 교수는 프로그램을 이수한 많은 할아버지들이 ‘요리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전하면서 할머니와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것도 시도해 볼만하다고 권장했다.
박 교수 저서 ‘노화혁명’이 제안하는 할아버지 장수지침 5가지
▽금연, 금주 아내에게 선물하기: 흡연과 음주는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건강의 적.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해 활력 찾기: 세계적 ‘할아버지 장수촌’ 비결은 일.
▽문화 활동 적극 참여하기: 노인복지관 문화센터를 찾아오는 고령인 대부분이 여성이다.
▽이웃과의 유대 넓히기: 건강하게 장수한 이들은 이웃과의 관계가 좋다.
▽부엌은 ‘인생 새출발’의 디딤돌: 가부장적인 태도 버리고 은퇴 후에 요리 등 집안일을 배우면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