肉身을 건강하게/건강한 행동

천의얼굴 ‘루푸스’, 여성을 슬프게 하는 병

하늘벗삼아 2012. 11. 9. 13:31


최근 유발 유전자 발견확대...원인규명은 먼길



 

2003년 ‘태양의 남쪽’이라는 SBS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성재(최민수 분)는 민주(유선 분)를 병으로 잃게 되고, 이후 연희(최명길 분)와 함께 민주가 남긴 아기를 키우게 된다. 민주는 ‘루푸스’라는 병으로 고통 받고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자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는다.

 

루푸스는 7년 전에도 생소한 질환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낯설고 어려운 질환임에 틀림없다. 병마에 고통 받는 애처로운 여주인공의 병이 과거에는 대부분 백혈병이나 암이었던 데 비해 루푸스라는 낯선 질환이 그 자리를 차지해 시청자들 사이에 무슨 병인가 하는 궁금증도 커진 기억이 있다. 작가는 왜 루푸스라는 병을 여자 주인공의 병으로 설정했을까? 루푸스라는 이름이 어떤 면에서 매력적으로 들렸을까?

 

루푸스처럼 천의 얼굴을 가진 질병이 또 있을까 싶다. 단순히 감기인 것도 같고, 심한 고열로 말라리아 마냥 헛소리도 하게한다. 그저 단순한 피부병처럼 오기도 한다. 때로는 류마티스관절염으로 오인되는 수도 있다. 근육에 염증이 생겨 근육통이 오기도 한다. 정신병, 뇌졸중, 간질, 우울증, 간염, 신장염, 폐렴, 늑막염, 심막염, 심근염, 방광염, 구내염, 말초신경장애, 혈관염, 빈혈, 갑상선염, 안구질환 등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증상이 생기기 때문에 얼굴에 생기는 특징적인 나비모양 발진을 제외하고는 증상만으로는 도무지 진단이 쉽지 않다.

 

루푸스 인식확산...설명되지 않은 증상 땐 검사지시

 

수 십 년 전에는 의사들이 류마티스 질환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히 진단이 되질 않아 다른 병으로 알고 치료를 시도하곤 했다. 예를 들어, 루푸스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던 시절 정신병원에 입원한 여자환자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루푸스 환자였다는 보고가 있다. 의학 발달로 루푸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생겨서 최근에는 잘 설명되지 않는 증상을 가진 환자들의 경우 의사들은 꼭 루푸스를 의심하고 검사 해 본다.

이렇게 어려운 루푸스는 어떻게 진단을 하나? 우선 다양한 임상증상 중에도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으면 의심한다. 얼굴 등 피부에 생기는 발진, 입안의 궤양, 관절염, 피부의 햇빛과민성, 정신병, 간질, 반복적인 유산(流産) 등이 있다. 검사를 해서 적혈구가 너무 많이 파괴돼 생기는 용혈성 빈혈, 혈뇨, 단백뇨, 백혈구감소증, 혈소판 감소증 등이 있으면 또 의심한다.

 

이런 경우 항핵항체검사라는 피검사를 하게 된다. 이 검사는 루푸스 환자의 98%가 양성을 보이는 대표적 선별검사이다. 이 검사에서 양성이면 이제 좀 더 많은 특수혈액검사를 실시해 DNA항체, Ro항체, La항체 등 반응여부를 확인하면서 루푸스를 확진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루푸스 원인 규명은 아직도 가야할 먼 길

 

최나미씨(24, 가명)는 2개월 전부터 근육통, 관절통, 미열이 있었다. 회사 야유회로 종일 야외에 나가 있던 날은 아예 드러누웠다. 처음에는 과로와 감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에 이상한 열꽃과 함께 고열이 지속되고 전신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다.

 

의사는 진찰 과정에서 얼굴의 발진을 살핀 뒤 대뜸 “루푸스 같다”며 “혈액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에 최씨는 아주 당황했고 밤새 인터넷을 뒤지다가 절망하기까지 했다.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생긴 것일까? 원인도 분명치 않고 모든 게 아리송하기만 했다.

 

최근 루푸스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한두가지 유전자로는 병이 발생하지 않고 수십가지 또는 수백가지 유전자가 서로 합쳐질 때 병이 생긴다. 그래서 다인자(多因子) 유전이라 한다. 이런 경우 병이 자녀에게 유전되는 경우는 드물다.

 

엽기적이고 파격적인 스타일로 유명한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도 자기 고모가 루푸스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어 걱정이 된다며 루푸스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혹 레이디 가가가 루푸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가족력 있으면 가능성 있으나 유전 드물어

 

그럼 유전자만 있으면 병이 생길까? 그렇지 않다. 다양한 후천적인 환경요인이 더해져서 자극을 주어야 병이 발생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여성호르몬(그래서 여자에게 많다고 함), 바이러스 감염,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루푸스는 문제가 될려면 병이 나타나기 전부터 몸 안에 자가면역 현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자가항체라는 것이 생긴다. 자가항체는 면역질환의 대표적인 표지자로서 몸의 구성성분(세포, 조직, 장기)을 공격해 병을 유발한다. 쉽게 설명하면 월드컵에서 수비수가 실수로 자기 골대에 골을 넣는 자책골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수비수는 상대방 공격을 막아 우리 골대를 보호하는 것인데 역할이 엉키는 것이다.

 

아직도 루푸스의 많은 부분은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고 우리는 모르고 있다. 마치 양파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우리의 인내심을 더욱 다져야 하는 상황이다.

엄완식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