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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선봉 주진오 교수 “역사 전쟁은 친일·독재의 기득권 세력과 싸움”

하늘벗삼아 2020. 1. 21. 12:48





주진오 상명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주진오 상명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전국적인 퇴진 시위에도 박근혜 정권은 ‘겁 없이’ 국정 역사교과서(중·고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를 선보였다. 여기서 ‘겁 없다’는 표현은 국민의 96%가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에 99%가 도입을 반대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십상시가 떠났어도 청와대에는 정무수석이나 교육문화수석 등 나름 정무기능이 가동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복잡한 퇴진 시국에 ‘역사전쟁’까지 수행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난해함’을 이해하기 위해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찍부터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반대·저지하는 ‘역사전쟁’의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역사교육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먼저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총평부터 들었다. 

“이 책은 교학사 교과서의 재판이다. 쓴 사람이 여러 사람으로 돼 있지만 핵심인 현대사 역사학자가 없고, 이념적으로 우편향된 사회학자가 쓴 것이다. 언론에서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현대사뿐 아니라 근대사를 쓴 이들도 대부분 현대사학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일부 퇴직교수와 국사편찬위 퇴직자들이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이들은 애당초 교과서를 쓸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은 역시 건국절 문제인가.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1919년 이미 수립됐는데 다만 임시정부였고, 1948년 정식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학계에서 건국절 논란은 끝난 사안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뉴라이트 계열 몇몇 사람의 말을 들어 임의로 뒤집었다. 과정 자체부터 문제다.”

역사학자들이 건국절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이번 책에서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경축행사, 관보 모든 것이 ‘정부 수립’이라고 했다. 그들이 떠받드는 이승만도 누차 ‘건국 29주년’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정부 수립 표현이 대한민국을 낮추고, 북한을 찬양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데, 우리 헌법은 임시정부 법통은 명시했지만 북한은 인정 안 한다. 누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인가.

세 번째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무엇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나. 되찾고자 하는 나라는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이 아니라 국민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이런 이유로 역사학계에서 1948년 건국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주 교수는 비록 이번 책에서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썼더라도 그것은 ‘꼼수’일 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평소 건국절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쓴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문은 박근혜 정권이 왜, 더구나 이런 퇴진 시국에 이렇게 무리수를 둘까 하는 점이다. 단지 부친의 친일행적을 지우려는 ‘효도 차원’일까. 이에 대해 주 교수는 보다 깊은 해석을 내놓는다.

“박근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과 독재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은 늘 우리 현대사를 불편해 했다.

친일파·현대사 연구가 부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사에 대한 박사학위는 1980년대 후반에야 겨우 나올 정도였다. 정치·경제·사회·학계(대학)에서 힘을 가진 이들은 떳떳하지 않은 과거에 침묵했다. 그러나 민주정부 들어 위기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에서 ‘우리가 역사의 주역이다’라고 나서는 것이다. 상쇄 무기로 종북·빨갱이 몰이를 동원했다. 국민의 레드포비아(좌익공포)를 자극하며 역사적 반전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친일세력은 분단세력으로 작용했으며, 이들은 다시 정치군인과 결탁하면서 독재세력으로 변모했고, 여기에 산업화를 거치면서 재벌과 합세해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형성했다. 이를 바로잡는 역사 바로세우기는 1995년 5·18 특별법 제정으로 겨우 시작했다.

주 교수는 이보다 앞선 1991년 KBS에서 <역사의 빚 친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자문하고 출연했다.

이것이 친일문제를 다룬 최초의 방송 다큐멘터리였다.

주 교수는 “당시 이 다큐를 제작했던 PD조차 ‘방송을 할 수 있을까’라며 조심조심 제작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어설프고’ ‘무식’했지만 ‘집요’했다.

주 교수는 “현행 역사교과서를 모두 좌편향이라고 매도하고, 뉴라이트 계열 학자를 동원해 대안교과서를 만들었다”면서 “만든 대안교과서에는 워낙 오류가 많아 호된 비판을 받으며 검정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용 중인 역사교과서를 쓴 사람을 모두 좌편향 학자로 매도해 적을 만드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시 대안교과서를 만든 민간 출판사까지 찾아가 축사까지 했다. 그러나 만든 대안교과서가 많은 오류와 문제점이 지적돼 실패하자, 다시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집요한 역사 반전, 역사전쟁의 시도였다. 교학사 교과서가 역시 워낙 오류가 많아 검정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육현장에서 외면해 버렸다. 교학사 교과서까지 실패하자 규정을 바꿔 아예 국정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역사 반전을 위해 무식했지만 집요했던 것이다.



11월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사용 반대 긴급포럼에서 주진오 상명대 교수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준용 한성여고 학부모 회장,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생명미디어센터 최성주 대표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1월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사용 반대 긴급포럼에서 주진오 상명대 교수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준용 한성여고 학부모 회장,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생명미디어센터 최성주 대표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이런 과정에서 누적된 국민적 분노는 지금 하야 시국 조성에 중요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시국이 변하자 교육부는 이 교과서를 국정과 검정 겸용으로 쓰겠다고 ‘눈치’를 보고 있다. 시류에 민감한 교육자의 추악한 모습이다. 이에 주 교수는 “교육부는 원래 국정으로 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청와대에서 강한 드라이브로 마지못해 따라간 것”이라며 “하지만 국정과 검정을 혼용한는 것은 법에 맞지도 않고 양립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들여 만든 이번 책도 오류투성이다.

역사교육연대회의와 한국서양사학회, 고대사협의회 등은 “1·2권을 합쳐 모두 400~500건의 오류가 발견됐다”면서 “오류와 왜곡이 너무 많아 도저히 교과서로 쓸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몇몇 사례를 들면 요즘 학계에서 인류 최초의 금속도구는 순동으로 규정하는데, 옛날 사료인 청동기로 표현하고 있다. 또 인류 최초의 법전은 우르남무 법전인데, 역시 옛날 사료인 함무라비 법전으로 돼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오류만 100개가 넘는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또 이 국정 역사교과서는 친일파에 대한 기준을 축소하고 박정희 정권 서술을 크게 늘리는 등 편파적으로 제작됐다. 게다가 교과서 초고본과 이를 수정한 개고본도 모두 파쇄해, 집필자의 원래 원고와 이를 누가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파악할 증거를 인멸했다. 제작과정도 철저히 비교육적으로 만든 것이다. 


주 교수는 “고대사 부분에도 학계의 공인 이론이 아닌, 소수 이론을 적시한 대목이 많다”면서 “박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재야사학자들이 주로 인용하는 이암(고려말 문신으로 <단군세기>를 편찬했다고 알려진 인물)을 언급해 역사학자들이 뜨악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최순실 얘기가 나오면서 역사학계에서는 그때 그것도 최순실 작품이었구나 하는 얘기가 나온다”고 소개했다.


주 교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 그는 처음에 역사교육과 교수가 아닌 사학과 교수로 교과서 집필에 자문 역할만 하다 ‘지적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그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채택률 100%, 합격률 100%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주 교수는 “좌편향 역사학자라고 욕을 먹었지만 한 번도 검정 심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면서 “교육부의 논리모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부친은 동국대 교수를 지낸 고 주종환 교수다. 주종환 교수는 농업경제학을 가르치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 1980년대에는 <재벌경제론>을 통해 재벌 중심 경제 폐해를 지적한 진보적 경제학자였다. 대학 은퇴 후에는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을, 말년에는 민족화합운동 상임의장, 시민사회남북연석회의 추진위원장 등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주진오 교수도 부친과 많이 닮았다. 그는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하자 초임 교수로 대학위원회에서 뛰었다.

소장 역사학자로 한국역사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에서 활동했다.

처음 박정희기념관 얘기가 나왔을 때는 ‘박정희기념관 반대 실무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역사전쟁에 가담했다. 주 교수는 지난 2월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역사교육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국정화 반대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 학생들이 바라는 역사교육이 뭐냐를 찾자는 것”이라며 “선생님들이 잘 가르칠 교재나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안 얘기가 나왔느니, 그의 아우는(많은 사람은 형으로 착각한다)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이다. 주 전 사장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 나왔을 때 거의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결국 이로 인해 그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저희 형제는 외모도 성격도 너무 다르지만 부당한 권력의 압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닮았다”면서 “아버지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삶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지적 능력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감성적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어머니는 늘 ‘의지짠다’(그는 이를 ‘단단히 하라’는 충청도 사투리로 해석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언제 어디서라도 남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는 노래면 노래(그는 현 JTBC의 전신이랄 수 있는 TBC어린이 합창단 출신으로 실제 음대에 진학해 성악가가 될 뻔했다), 글이면 글(그는 백일장에서 장원도 했다), 영화면 영화(그는 영화 <밀정>이나 <암살> 등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등 다방면에 재주가 많다. 심지어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20년 넘게 여성사를 강의하는 유일한 남성교수다. <한국여성사 깊이 읽기>라는 이 분야의 저서도 있고, 현재 <여성신문> 편집위원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재주를 갖게 한 것이 어머니의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 교수는 경직된 운동권 문화 역시 싫어한다.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교수모임도 경직된 문화가 싫어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유주의자에 가깝다. 특히 역사교육에서 원칙은 양보할 수 없지만, 방법은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는 일찌감치 사학과라는 고답적인 학문이 아닌, 역사콘텐츠 학과라는 특성화 교육을 시도했다. 단순히 과거 사실을 외우는 역사가 아닌 영화나 스토리텔러 등 역사를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영화가 완성돼 상영하면 뭐라고 지적하는데, 그러지 말고 제작 단계부터 자문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을 추구하는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의 본업은 역사학자다.

그가 바로 보는 역사는 무엇일까.

“프랑스 역사학자 장 셰노가 <무엇을 위한 역사학인가>라는 책을 썼다. 나는 대학원 시절 이 책에 감명을 받아 <실천을 위한 역사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관계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되고 현실을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현실적으로 실천돼야 한다.” 

그가 현재 살아 있는 역사의 다양한 콘텐츠화에 천착하는 이유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