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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하늘벗삼아 2019. 12. 21. 01:21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이 죄수는 예수로 변모하고 있었다. “항상 서로 사랑하라. 그 밖에 별게 없느니라

 

1. 빅토르 위고와 레미제라블, 그리고 혁명

2. 프랑스 혁명 정리-수정주의 입장에서

1) ~1891년 혁명 1

2) 1793~ 혁명2

3) 왕정복고

4)18307월혁명

내용분석

1. 팡틴

1. 올바른 사람 - 미리엘 주교

2. 혁명정부 국무위원

3. 죄와 징벌이라는 문명의 정당성

4. 저주와 은혜의 충돌

5. 자베르

2. 코제트

1. 워털루

2. 수도원- 가혹한 오류

3. 마리우스

4.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 생드니거리의 서사시.

1. 결말. -낭만주의 언어에 대하여

2. 반역과 폭동 즉 혁명과 폭력성에 대하여

3. 민중, 가브로슈

5. 장발장

1. 혁명과 국민들

2. 자베르 법칙주의와 사랑

3.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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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해].은은기

[빅토르 위고 작품의 스토리텔링과 OSMU].차영선.2010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 작가정신, 출판사 리뷰, 2007,

낭만주의변신론: 레미제라블의숭고와 그로테스크,이충훈.2013

프랑스 대혁명과 혁명적 폭력. 통일인문학.송기형 (1995).

 

 

 

레미제라블 세트

작가
빅토르 위고
출판
민음사
발매
2012.11.01.

리뷰보기

1. 빅토르 위고와 레미제라블 그리고 혁명

'불​쌍한 사람들로 번역되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프랑스 문학 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 받는 빅토르 위고가 [노틀담] 이후 30년 만에 걸쳐 완성한 소설로 1862년 발간 후 지금도 압도적인 감동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면서전 세계적으로 32여 차례 영화로 제작되고 연극, 뮤지컬, 오페라, 이제스트,방송 드라마, 만화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대중매체로 변환(conversion)되고 있다. 테오필 티에(Theophile Gautier)에 의하면 레미제라블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상황과 자연에 의해 창조된 품으로서 당시 프랑스의 정황과 대혁명의 진상이 잘 묘사돼 있다. 작품의 탄생 경위가 위고가 살았던 시대의 삶과 역사에 긴밀히 맞물리면서 당시 프랑스 역사의 현장과 전반적인 사회상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잘 조명하고 있다. 1789년 대혁명 당시 프랑스의 국고가 바닥난 상황이었고, 각종 자연재해와 재정난 및 과도한 세금 징수로 민중의 삶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 고갈되어 갈 때 귀족과 성직자들로 구성된 구체제 옹호자들은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482월 혁명으로 제2공화국의 수립 이전 ‘7월 왕정체제하에서는 거의 매년 노동자와 학생들의 봉기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혁명적인 분위기는 이후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후 위고는 공화주의에 기울어 빈자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는, ‘자유, 평등, 공화주의 체제를 위한 역사의 현장 속에 직접 뛰어들면서,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을 수립하자 그의 사명은 시인으로서 민중의 소리이어야 하므로,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저항운동을 하다 추방돼 19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만년에 장장 18년이라는 기간 동안 집필한 소설이다. 이 작품을 탈고하면서 그는 이제는 죽어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자신의 모든 사상을 집대성했다. 그는 사실 본래 왕정복고기에 왕조파인 부르봉 파를, 오를레앙 루이 필립 치세에도 오를레앙 파의 왕정에 찬성하며 정치에 투신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18482월 혁명 이후부터 확고한 민주주의자요,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배경인 18326월 봉기 때에는 아직 그는 왕당파의시선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셈이다. 1851년 당시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단행한 쿠데타로 루이-나폴레옹이 프랑스 국민 의회를 해산하고, 곧 이은 국민 투표를 통해 이듬해 프랑스 제2 제국 황제가 될 때 망명했다. 이후 위고는 브뤠셀, 저지섬, 건지섬 등을 전전했다. 이때 집필한 작품이 [레미제라블]이다.

 

2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레미제라블]이라는 대 서사시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소설의 기본 줄기는 가족 부양을 위해 빵을 훔치다 감옥에 간 저주받은 영혼, 장발장이 프랑스의 온갖 세파와 사건 속에서 서서히 성인이 되어가는 내용이다. 팡틴, 코제트, 마리우스 가 어우러져 그려내는 사회상과 사랑, 인생, 고난과, 신앙, 숭고함과, 비참함, 편견과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보다 철저해 지는 장발장의 양심이 주제중 하나이다. 그리고 죄악 된 세상에서 헌신과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어내는 숭고한 성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기나긴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자베르와 장발장 그리고 그리고 미리엘 주교를 대비 또는 융합시키며 진정한 신앙과 선에 대한 탐색을 겸한다. 자베르(펠라기우스-율법주의-닫힌 도덕)의 계보와 장발장(아우구스티누스-은혜-열린 도덕)의 계보를 대조시킴으로써, 기독교윤리의 특성과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윤리가 은혜에 기초한 열린 도덕으로서의 특성을 옹호하는 결말로 귀결된다.

하지만 결코 이 소설은 기본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는 프랑스 혁명이다. 소설의 각 권에서 17877월부터 18326월까지 여러 차례 반복된 격동의 프랑스 혁명의 본질과 그 세밀한 현장을 그려낸다. 혁명을 배경으로 과도한 사법징벌의 희생자 장발장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속죄양의 성인으로 마감하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문화 종교를 엮어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소설에는 갑자기 지류로 흘러 깊이 있게 파헤쳐지는 또 다른 주제들이 많다.

1.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

2. 혁명의 의미와 정당성

3. 죄와벌, 엄한 사법적 징벌과 정의의 문제

4. 수도원, 수녀원의 교육과 문화

5. 워털루 전쟁

6. 파리의 하수도

7. 혁명과 폭동, 반역과 폭동. 등이 그 주제들이다.


본 요약본에는 파리의 하수도를 제외한 주제들을 언급했다. 장발장이 감옥에 갈 때로 부터 코제트를 보내고 홀로 나올 때까지는 한 세월을 지낸 느낌이었다. 책을 덮으며 저자가 왜 이렇게 거대한 서사시를 계획 했는지 알 듯한 마음이 들었다.

 

빅토르위고는 스스로 그 자신이 왕정옹호론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편견과 이기심을 깨닫고 공화정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가 루이 나폴레옹의 황제정에 반대하여 망명하여 돌아다니며 쓰고 싶은 글이 있었을 것이다. 기존 황제가 다스리는 계급 사회의 비참한 서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그것이 결코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의도하는 사회의 모습이 아님을 역설로 그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터무니없이 가혹한 사법권과 범죄자에 대한 편견의 횡포를 나타내는 기사를 접했다. , 한 가난한 농부가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형을 살았으나 출옥 후 사람들의 편견으로 취업을 못하고 전전하다가 한 신부의 도움으로 그 형제인 장군 집에 들어가 죄를 뉘우치고 헌신했다는 기사였다. 빅토르 위고는 이 줄거리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온 사회가 천대하고 핍박하는 그 죄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역설한 것이다. 최고의 가치인 사랑,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서 부패한 종교, 법을 걷어낸 것이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인 것이다. 위고는 레미제라블을집필 하면서, 자신도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의 범주에 포함시킴에 따라 온갖 모진 풍파를 겪으며 결코 낙심치 않는 장발장의 이미지는 빅토르 위고 자신의 생애와 관련지어진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하고 가련한 ,소외된 사람들, 하층 계급,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로써, 소외된 사람으로서 위고가 유배기간 동안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레미제라블을 완성하는 이유는 피로써 자유를 쟁취한 프랑스 대혁명 이래 민중들의 삶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관점에서 레미제라블민중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함께 사회개혁의지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로서, 유럽의 워털루 전쟁,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 빈 체제 밑에서 자유주의를 억압한 샤를 10세의 몰락, 그리고 파리 꼬뮨의 형성 전까지의 7월 시민혁명(1815-1830)을 증언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다

 

2. 프랑스 혁명 정리-수정주의 입장에서

 

1) ~1891년 혁명 1

프랑스 시민혁명은 수정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실은 민중이 아닌, (자유주의적)귀족과 부루주아지가 그 주축이었다. 영국학자 코반에 따르면 봉건제도는 이미 중세 말에 몰락했으므로 정치적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혁명의 실체는 관리와 전문직업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테니스 코트에 모인 삼부회 제 3신분의 부르주아들이 국민의회를 주도하면서 전제적 절대왕정을 대항하여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그들은 금융,상공업자, 법률가 등의 구릅으로 정권에서 배제되었고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지장을 주는 길드,관세,조세,행정규제 등으로 경제활동에 제약이 따랐다. 그들은 이를 개선하고 싶어했다. 이들은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계급으로 인식했고 정치혁명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힘은 미약했고, 드디어 파리 민중의 폭력적 개입으로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

 

곧이어 일어난 농민혁명은 부르주아들을 당황하게 했다. 민중의 개입에 놀란 부르주아는 귀족을 제물로 바치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였다. 결국 부르주아지는 회의를 통해 봉건제를 폐지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이 혁명의 진짜 목적은 1791년 제정된 헌법을 보면 드러난다. 그들은 혁명이 끝난 후 귀족과 화해하여 정권을 나누어 가졌다. 길드, 내륙관세, 통행세, 고등법원이 폐지되었다. 농민들의 봉건적 공납을 폐지했으나 유상 폐지였다. 중소 부르주아 미만의 돈이 없는 농민들은 예외였다. 참정권도 직접세를 납부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에게만 부여했다. 자베르가 팡틴을 괴롭힌 시민을 옹호하고 오히려 팡틴을 체포한 이유도 그 상대가 바로 이 납세시민이었기 때문이다. 혁명 후, 몰수된 교회재산도 큰 덩어리로 매각됨으로써 부유한 자영농과 부르주아지의 차지가 되었다. 혁명의 혜택은 입법의회를 주도한 지롱드 파 즉 자유주의적 귀족들과 대 부르주아지 들이었다.

 

2) 1793~ 혁명2

1791년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흉년, 국왕의 도망사건 토지분배에 대한 불만 등으로 농민폭동 등이 이어지고 있었고, 망명귀족들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 상공업자가 주축을 이루는 지롱드 파는 전쟁으로 이득을 얻을 것으로 여겼다. 지롱드 파는 1792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선전 포고를 한다. 전쟁으로 민중의 영향력은 커지고 혁명은 과격화 되었다.

공화정을 선포한 국민공회는 1792~95까지 존속했는데, 750명중 노동자는 단 2명이었다. 93년을 기점으로 왕권불가침을 옹호한 지롱드파는 힘을 잃고 중소브루즈아 출신으로 구성된 산악파가 득세하였다. 산악파 주도하에 국왕은 1793년 처형된다. 권력을 장악한 산악파는 혁명재판소와 공안위원회를 가 주도하는 대대적인 공포정치로 지롱드 파를 숙청한다. 그리고 93년 신 헌법을 통해 상퀼로트를 끌어들이고 망명귀족의 토지를 빈농도 취득할 수 있도록 분할매각하고 봉건적 공납을 폐지함으로써 농민층을 혁명대열에 참여시킨다.

 

공포정치의 출발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전쟁이다. 왕의 탈주 사건 후에야 부득불 헌법을 만들어 입헌 군주제를 출범하려하자 왕은 외국군을 불러들이려 밀서를 보내는 등 적극 노력했다. 이것이 페이양 대신 권력을 잡으려는 지롱드 파의 계산과 맞아떨어져 전쟁이 시작된다. 과거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왕의 전쟁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지만 1792년의 전쟁은 혁명과 함께 나타난 개념인국민의 전쟁, 즉 국민전이었다.

수많은 군대가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다. 자유를 혐오하는 자들이 우리 모두의 헌법에 대항하여 무장하고 있다. 시민들이여 조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프랑스 대혁명사] 알베르 소불 .1984

귀족들과 왕당파는 공공연히 패전소식을 즐기며 반혁명을 선동했다. 1792년부터 인플레와 경제난도 심각해 지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 부르주아지가 상퀼로트의 혁명적 폭력에 의지하여 국내외의 적과 반혁명을 분쇄하고 정치경제적 요구(수동시민구분 철폐, 왕정폐지, 국민공회, 공정가격제)를 수용한 것은 당연하다. 혁명이 아니라 국민적 존망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1792년의 학살은 결코 옹호할 수 없지만, 국내외 위기 상황에서 혁명적 폭력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폭력에 의해 완정을 무너뜨림으로써 내부의 적을 얼어붙게 만든 혁명세력은 왕당파 클럽과 언론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 왕정폐지와 공화정을 선포함으로써 새로운 장을 연다. 특히 발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독일과 벨기에에 진격하여 유럽의 혁명화를 외치게 되었다. 그러나 급진적 산악파가 주도한 왕의 처형은 혁명을 돌이킬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다. 이제 혁명은 국왕 시해범이 됨으로써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반 혁명에 대한 응답으로 왕을 처형 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모든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마라] ” “이제 우리는 전진하는 수 밖에 없으며 그야말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칠수 있게 되었다. ” [르바]. 과연 왕의 처형후 전유럽이 프랑스를 공격하게 되었다.

지롱드 파를 제거한 산악파는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제도화된 공포정치를 통해 국가위기를 해결하는데 성공한다. 1793년 총동원령 모든 프랑스인들이 총 동원되어 한꺼번에 진군하자!”는 구호는 혁명독재공포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공안정권은 자본의 발전이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시민들이 사치의 정념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자산소유를 억제하고, 이를 위해 자본주의 발전을 억제하고, 검소한 민중을 바탕으로한 덕의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이러한 입장은 수공업자나 소상점주인 등이 주도가 된 쌍퀼로트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발전으로 자신들이 노동자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 산악파의 급진적 노력은 결국 민중의 외면을 받는다. 결국 반로베스피에르파에 의해 독재자로 몰린 로베스피에르와 100여명의 사람들은 참수되고 1795년 새 헌법에 의해 5명의 총재가 다스리는 행정부가 설치된다.

 

3)왕정복고

 

혁명은 사실상 종결되고 농민이 혁명의 열매를 맛보기도 전에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독재정치가 시작된다. 181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러시아 원정을 나갔다가 크게 패했고, 프랑스로 돌아오기 전 연합군(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를 내놓고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에 100일 천하 중 망명 생활을 하던 부르봉왕가의 루이 18(Louis XVIII, 재위 1814~1824)가 파리로 돌아와 18146월 왕위에 올랐다. 이로써 부르봉 왕가가 왕정을 복고했으며, 1824년 샤를 10(Charles X, 재위 1824~1830)가 즉위했다

 

4)18307월혁명

 

1824년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샤를 10세는 프랑스 혁명의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으로서 입헌정치를 인정하지 않고, 구제도로의 복귀를 원하여 극단적인 반동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르주아와 세력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반대는 높아졌고, 182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로 국민의 불만은 더욱 증대되었다. 반대세력은 18305월 총선거에서 하원에 대량 진출하였다. 이에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7월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또다시 반정부세력이 다수를 점하였다. 결국 왕은 강압적으로 1830725일 소위 7월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출판 자유의 정지, 하원의 해산, 선거자격의 제한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26일 자유주의 저널리즘은 공공연히 반항할 것을 호소하여, 27일 소부르주아 ·기능공 ·노동자 ·학생 등 파리의 민중은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하였고 곧 군대와 충돌이 시작되었다.

 

28일 바리케이드의 수가 늘어가고 종래 금지되었던 삼색기(三色旗)가 나부꼈으며, 시가전은 격화되었다. 군은 알제리에 파견되어 있었기 때문에 병력이 모자랐고 탄약보급이 불충분하였으며 복잡한 시가지에서는 행동이 제약되고, 배반자가 나오는 등 형세는 점차로 정부측에 불리하게 되어갔다. 29일 민중은 왕궁으로 침입하였고, 시가전은 정부측의 패배로 끝났다. 이 혁명의 날(2729)영광의 3이라 부른다. 바리케이드로 싸웠던 민중과 그 지도자 가운데에는 공화주의자도 있었으나 입헌왕정파의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은 오를레앙가의 루이 필리프를 추대하여 민중운동을 교묘하게 수습하였다.

 

그러나 부르봉 왕조의 존속은 허용되지 않았고, 87일 하원은 공위를 선언하고 루이 필리프를 왕위에 앉혔다. 9일 새로운 왕은 이를 수락, 새로운 헌장을 지킬 것을 맹세하였다. 이리하여 루이 필리프 1세하에서 7월 왕정이 성립되었고, 혁명은 보수적인 입헌왕정을 자유주의적인 입헌왕정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프랑스혁명 이래의 대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이 시기 가 장발장과 코제트, 마리우스가 바리케이드를 배경으로 삶이 요동하는 격변의 배경이 된다.

 

 

 

내용분석

1. 팡틴

 

1. 올바른 사람 - 미리엘 주교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돼. 그건 외부의 위험이고 작은 위험이야. 우리들 자신을 두려워하자. 편견이야말로 도둑이고,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들 내부에 있어. p 55

 

가장 올바른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리엘 주교는 이 소설의 큰 주제를 먼저 제시한다.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의 나아가는 길의 등이요. 그가 마직막에 완성할 성인의 표상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신앙에 의문을 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행동들은 항상 종교의 교리와 전통을 뛰어넘는다. 율법이 아닌 은혜와 용서라는 대 주제, 자베르가 아닌 장발장이 이루는 구원의 모습을 이끌고 가르치고 증언해주는 존재이다. 그는 누런 통행증으로 인해 잘 곳도 먹을 곳도 얻지 못하는 버림받고 저주받은 죄수에게 은혜를 베풀고, 받아들이고, 동등하게 대해주고, 용서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금 촛대가 이미, ‘장발장이 훔치기 전에은혜로 인해 장발장의 소유가 되어있었음을 증언해 주는, 그리하여 장발장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득불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주교가 저주받은 영혼, 장발장을 은혜 안으로 단번에 끌어들이는 장면은 이 대서사시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대단히 심오하다. 이후에 장발장은 이로인해 고뇌하고 번민에 빠진다. 이충훈(2013)의 글이 이를 잘 파악했다고 본다.

장발장은 그들에게위험한자이다. 그는 엄중히 감시받는 절도범이다. 그는19년의 복역으로죄를 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불안이 공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장발장이 그를 맞은 주교의 집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교는 장발장이 다시 지은 죄를 죄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문제는 주교가 장발장을 왜 용서했는가에 있지 않고, 장발장으로 하여금 제 잘못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만드는 방식에 있다.

 

! 당신이구려! 이것보시오. 당신에게촛대도드렸잖소. 다른것처럼 그것도 은이니 이백프랑은 족히 받을텐데. 식기는 가져가고 그건 왜가져가지 않았소? 친구여, [] 떠나기 전에 여기 당신에게 준 촛대가 있으니 가져가시오. [] 장발장, 나의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거요.

 

주교는 장발장의 발각된절도(vol)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처벌하는데 있지 않고 동등하거나 더 큰 증여(don)로 그것을 무효화하는것임을 잘 알았다. 그래서 주교는 헌병들에게 은식기(그리고 그가 가져가지 않았던 은촛대)가 장발장이 훔치기 이전에 이미그의것’vos)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그런데 이증여는 무상의 것이 아니다. 증여물이장발장의의 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그것을 미리엘주교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 그의것이 되어버렸을 때 (주교는 이 점에대해 말할 때 대과거 시제를 사용한다), 증여물의 수탁자는 사전에 동의가 없었음에도 그 증여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무언의 대가 역시수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장발장으로서는 이중의 구속이다. 증여의 사건이 없었다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는 다시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이번에는 영영 수형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증여가 주교와 그 사이에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말 한다면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증여에뒤따르는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주교와 장발장사이에, 어떤점에서지연(遲延)증여 행위를 증언하는 증인은 헌병들이지만, 사실은그들과는 다른 둘을 매개하는 제삼자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주교는 장발장에게 나는 당신에게영 혼을사주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여는 주교와 장발장사이에서가 아니라, 단지 주교를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장발장이 어쩔 수 없이 주교가 은밀하게 제시하는 일종의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는 주교가 아니라 주교를 매개로 자기에게 증여를 행한 존재에게 구속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발장은 후에 미리엘 주교와 같이 무조건적인 증여를 반복할수록 숭고해지며, 결국 그는 스스로 타인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순교자가 되기에 이른다.장발장은 앞으로마들렌시장으로, 수녀원에서 일하는 포슐르방씨로, 마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바리케이드전투에 참여하는 코제트의 아버지로 살아 갈 것이다. 매순간 그는 상징적인 죽음을 경험하지만 끊임없이살아서돌아온다. 장발장으로 오인되어 죽을처지에 놓인 샹마티외를 위해 법정에 자진 출두하여 재수감되고, 감시망을 좁혀오는 자베르를 피해 수녀원에 은둔할 목적으로관()에 갇혀 묘지에 묻히고,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살려내기 위해 파리의 하수도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는 목숨을 걸고 제게 주어진 과업을 성취한다. 그 과업은 장발장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운명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하는영벌(永罰)로 기능한다. 그러나 제게 맡겨진 과업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면서 그는 비로소 숭고해질 수 있다. 단 한번의 회심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삶의 매 순간 보통의 인간이라면 감히 시도도 하지 못할 선행으로 자신을 드높인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자기 안에 존재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유혹하는 죄 많은 야수장발장을 지우고 가장 선한 존재인 주교만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혁명정부 국무위원

 

올바른 사람 미리엘 주교와 혁명정부 국무위원의 논쟁을 통해 혁명의 의미를 소개한다. 그는 주교가 기존 종교와 신분에 대한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루이 16세로 말하자면 난 반대했소. 나는 한 인간을 죽일 권리가 내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악을 절멸시킬 의무는 있다고 생각하오. 나는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소. 다시 말해서, 여성에게는 매음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 상태의 종말, 아동에게는 암흑의 종말이오. 나는 공화제에 찬성함으로써 이와 같은 것에 찬성한 거요. 우애와 화합, 여명에 찬성한 거요! 편견과 오류의 붕괴를 도운 거요. 오류와 편견의 붕괴는 광명을 가져오지. 우리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렸소. p77

 

슬프게도 작품이 미완성이었다는 걸 나도 인정하오. 우리는 현실에서는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사상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소. 폐습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권리에는 분노가 있는 것이오, 주교님. 권리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요. 누가 뭐라고 하든, 프랑스혁명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한 걸음이었소. 미완성이긴 했지. 그러나 숭고했소. 혁명은 모든 사회적 미지수를 끄집어냈소. 혁명은 인간의 정신을 온화하게 하고 진정시키고, 위안하고, 밝게 하였소. p77,78

 

루이 17! 좋소. 그런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슬퍼하시오? 그가 무고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좋소. 나도 당신과 함께 슬퍼하겠소. 아니면 그가 왕자였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좀 깊이 생각해 보시오. 카르투슈의 아우는 오직 카르투슈의 아우라는 죄만으로 그레브 광장에서 양쪽 겨드랑이를 매달아 마침내 죽게 했는데, 이 무고한 어린아이의 죽음은 나에게는 오직 루이 15세의 손자라는 죄만으로 탕플 탑에서 고통스럽게 죽은 루이 15세의 무고한 어린 손자 루이 17세의 죽음 못지않게 가슴 아픈 일이오. p79

 

주교가 그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늙은 국무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카르투슈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루이 15세를 위해서 입니까?” ... 루이 신부님, 당신은 노골적인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구려. 그리스도는 그걸 좋아했는데. 그는 채찍을 들고 예루살렘 사원에서 간상배를 쫓아냈소. ...루이 17세 이전에 우리의 눈물이 시작되어야 하오. 나는 당신과 함께 어린 왕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겠소. 다만 당신이 나와 함께 민중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준다면. p80

 

나는 오스트리아 황녀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엾게 여기지만, 나는 또한 루이 대왕 치하였던 1685년 아기에게 젖을 주다가 잡혀 허리까지 발가벗겨진 채 아기와 떨어져 말뚝에 결박되었던 저 가련한 신교도 부인도 가엾게 생각하오. 그녀의 젖가슴은 젖으로 부풀었고 가슴은 고통으로 부풀었소. 배가 고파 파리해진 아기는 그녀의 젖가슴을 보면서 괴로워하며 울부짖는데, 사형집행인은 어머니요 유모인 그 부인에게 '개종하라!'라고 말하면서 아기의 죽음과 양심의 죽음 중 선택하게 하였소. 한 어머니에게 적용된 이 탄탈로스의 처형을 당신은 어떻게 보시오? 이 점을 잘 기억해 두시오. 프랑스혁명은 이유가 있었소. 그 분노는 미래에 용서를 받을 것이오. 그 결과는 더 나은 세계요. 그는 가장 무시무시한 타격으로부터 인류에 대한 애무가 나오는 거요. 이만 줄이겠소. 이만 그치겠소. 내가 너무나도 유리하니까. 더구나 나는 이제 곧 죽을 것이오.p85

 

그렇소,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욕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pp86

 

그러나 물론 주교는 무신론적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교는 진보는 하느님을 믿어야 가능하오. 선은 믿음 없는 하인을 가질 수 없소. 무신론자는 인류의 나쁜 지도자라고 말한다. 어쩌면 진보와 정의는 현실의 문제이고 신과 신앙은 형이상학적 문제이다. 서로다른 기초에서 통일된 논의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국무위원은 자신은 부당하지 않음만을 주장한다. 아마도 오히려 신앙의 시대인 중세시대보다 더 정의로와 졌음을 말하는 듯하다.

나는 부자가 아니었소. 나는 국무위원 중 한 사람이었는데, ... 아르브르세크 거리에서 1일분에 22수짜리 식사를 했소. ... 내가 제단 보를 찢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조국의 상처에 붕대를 감기 위해서였소. 나는 언제나 인류가 광명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도왔고, 때로는 무자비한 진보에 저항하였소. 경우에 따라서는 나 자신의 적인 당신네들을 보호하기도 하였소. ... 무지몽매하고 가련한 군중에게 내 얼굴은 천벌 받을 놈 같은 얼굴로 보이겠지만,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증오 받는 사람의 고독을 감수하고 있소. 지금 내 나이 여든여섯이오. 나는 곧 죽을 것이오. p88

 

3. 죄와 징벌이라는 문명의 정당성

 

장발장은 '야간에 가택에 침입하여 절도 행위를 한 혐의로' 당시의 법정으로 보내진다. 사회에는 많은 편견이 있고, 밀렵꾼에 대해서는 지당한 편견이 있다. 절도범도 마찬가지다. 정상을 참작하거나 공평한 시선을 주는데 인색해지고, 편견이 강할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장 발장은 유죄선고를 받았다. 빅토뤼 위고는 그 편견의 가혹한 형벌아래 놓인 약자즉 죄수들이 겪는 나락의 감정을 펼쳐 보인다.

 

우리들의 문명에는 무서운 시기가 있다. 파멸을 선고하는 순간이다. 사회가 하나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회복할 길 없이 버리고 떠나갈 때 그것은 얼마나 슬픈 순간 인가 ! 장발장은 오 년 징역형 을 선고 받았다 . 목에 걸린 쇠고리의 나사못을 기둥에 대고 박느라 머리 뒤에서 망치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그는 울고 있었고, 눈물에 목이 메어 말도 못 했다. 158

장발장은 탈옥을 시도한다. 특별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이 행위로 인 해 그는 오 년의 가중형에 처해졌는데, 그중 이 년은 두 겹 의 사슬형 ,이 새로운 탈옥 미수로 말미암아 삼 년이 가형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탈옥을 시도했으나 네 시간의 도피 후 다시 붙잡히는 데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네 시간으로 삼 년. 도합 십구 년. 181510월 석방되었다. 그는 유리창을 부수고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796년에 형무소에 들어갔던 것이다.

먼저 장발장은 자기 자신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장 발장은 먼저 자신이 부당하게 벌을 받고 있는 무죄한 자가 아 니라는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형벌자체가 안에 존재하는 불합리함을 그는 몸으로 겪었다.

 

노동자인 나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부지런한 나에게 빵이 없었던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니던가? 다음으로, 과오를 범하고 자백하기는 했지만, 징벌이 가혹하고 과도하지는 않았던가?

범죄인 쪽에서 범행에 잘못이 있었던 것보다도, 법률 쪽에서 형벌에 더 많은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과중한 형벌은 범죄는 조금도 없애지 못한다.163

 

당하는 장발장 입장에서는 그 편견과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롭지못한, 더더욱 가중한 구형이 너무나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 어슴푸레하고 희멀쑥한 그림자 속에서 기어 다니면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쳐들려고 할 때마다 갖가지의 사물과 법률, 편견과 인물과, 사실들이 그 윤곽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겹치고 서로 쌓여서 무서운 절벽을 이루면서 까마득하게 높이 솟아올라 그 산더미 같은 것들이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그는 분노어린 공포심을 품고 보았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저 어마어마한 피라미드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170

 

첫째는 자기가 받은 악에 대한 보복으로서 행하는 급속 하고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악행이요, 둘째는 그러한 불행이 줄 수 있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서 따져 생각한 마음속에서 생각해 낸 진지하고 중대한 악행이다 그의 모든 사상의 출발점은 도착점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법률에 대한 증오였다.

 

3부 마리우스 편에서 저자는 장발장을 분노케한 그 법의 집행이 너무나 가혹하면서도 결코 정의롭거나 의롭지도 못함을 고발한다.

왕정은 때때로 어린아이들이 필요했는데, 그런 때에는 거리에서 긁어모았다. 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함대는 없다. 갤리선은 노예나 죄수에 의해서 밖에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 를 젓는 죄수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의 재상 콜베르는 지방 장관과 최고 법원에 명령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죄수를 만들 어 내게 했다. 사법관들은 그의 환심을 얻으려고 죄 수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다. 가령 종교 행렬 앞에서 모자를 쓴 남자, 거리의 아이들이 15살이고 집도 절도 없으면 그를 갤리선으로 보냈다. 루이 15세 치하에 어린아이들이 파리에서 사라졌는데 ... 때로는 어린 아이가 모자라서 헌병들이 아버지 있는 어린아이들을 잡아 가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들은 절망하여 경찰들에게 대들었다. 그러한 경우에는 고등법원이 개입하여 교수형을 처했는데, 누구를? 경찰들을? 아니다 아버지들을. 3p 22

 

4. 저주와 은혜의 충돌

 

법률과 사회에 대한, 분노의 장발장은 해처럼 바른 인간인 주교를 경험하고 정체성이 혼란에 빠진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만약 그 인자함 에 저항할 수 있다면 자기의 냉혹한 마음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고 말리라고, 그는 그 노인의 천사 같은 행위와 다정스러운 말에 대항하여 자 기 마음을 독하게 다졌다.

이 결정적인 대전은 자기 자신의 사악함과 그 노인의 인자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201

장발장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두 존재를 응시한다. 장발장은 스스로 이들 대립항들의 중간, 즉 정념과 자기 안위에 굴복하는 보통의 인간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제게 남겨져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주교가 될 것인가, 죄수로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신과 야수 사이에 위치한 인간의 지위30)를 무한자로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신학적 주제이다.

그의 의식은 자기 앞에 그렇게 놓여있는 두 사나이, 주교와 장발장을 번갈아 바라 보았다. 그런데 장발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그래도 역시 주교가 필요했다. 이런유()의 환희에 특징적인 기이한 효과 하나로 말미암아 몽상이 계속 될수록 주교는 점점 커져 그의 눈에 번쩍이고, 장발장은 점점 작아져 스러져갔다. 얼마큼 시간이 지나자 그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홀연 사라져 버렸다. 주교만이 남아 있었다. 주교는 이 불쌍한 사나이의 온 영혼을 휘황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발장은 오래오래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더 연약하게, 어린아이 보다 도 더 두려워하며 흐느끼며 울었다.

 

시장 마들렌, 장발장은 불행의 굴레에 빠져버린 팡틴의 절규를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영혼과 인생을 그대로 믿어주고 긍정한다. 자신이 받았던 선험적 용서를 나눈다.

당신과 아이는 내가 책임지겠소. 원하신다면 일은 안 해도 좋소. 필요한 돈은 내가 다 드리겠소. 당신은 다시 행복하게 되고 다시 정숙한 여자가 되시오. 아니, 그뿐 아니라 잘 들으시오. 지금 당장 당신에게 말하는데, 모든 것이 당신 말과 같다면, 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당신은 결코 타락한 것이 아니고, 또 천주님 앞에서 정숙하고 순결하기를 결코 그친 적이 없었소. ! 가엾은 여자!” 그것은 가련한 팡틴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354

 

5. 자베르

 

자베르는 율법주의와 철저한 법의 집행과 징계, 닫힌도덕을 체화한 보수적 인물을 상징한다. 즉 구 세계의 편견의 확고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가치관, 즉 형성된 편견이 자베르 자신이고 그 전부이다. 자신의 규정이 스스로에 의해 위반되었을 때 자베르는 자기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다. 자베르는 장발장을 괴물로 규정하고 그가 감춘 괴물같은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비록 장발장이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감추고 선행을 하면서 살고자 하지만, 자베르는 괴물의 본성은 그런 몇 가지 선행으로는 결코 변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장발장은 자베르에 맞서 자신의 회심을 지키기 위해 고뇌하고 투쟁하며, 장발장의 내면의 투쟁의 장소에서 그들은 다시 마주친다.

 

자베르가 장발장을 쫒는 죄목은 대단치 않다. 법 집행의 엄위라는 위엄은 그런 것이다. 빈틈과 감정을 배재할수록 존재감이 확고해진다.

 

20년전 퉁롱에서 본 적 있는 죄수입니다. 그는 형무소에서 나온 후, 어느 주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한 것 같고, 그런 뒤 공도에서 소년하나를 공갈하여 무엇을 강탈했습니다. ... 진짜 장발장이 잡혔는데, 사과를 훔친 것은 애들에게는 장난이고 어른에게는 경범죄지만, 전과자에게는 중죄입니다. 그것은 경죄재판이 아니라 중죄재판의 문제입니다. 며칠간 구류가 아니라 종신징역입니다. p367,370

 

 

누군가 장발장의 누명을 쓴 사실에 장발장은 고뇌한다. 작은 양심의 거리낌 때문에 다시 죄수의 몸이 될 것인가? 그 부당한 형벌아래 놓여야 하는가? 스스로.

 

그는 도로 도둑이, 도둑 중에서도 가장 끔찍스러운 도둑이 되고 있었다! 그는 남한테서 그는 남한테서 그의 생존을, 생명을, 평화를, 햇볕을 받는 자리를 훔치고 있었다. 그는 살인자가 되고 있었다. 그는 죽이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끔찍한 산 죽음을 , 형무소라는 그 백주하의 죽음을 주고 있었다. ...반대로 자수하고, 그토록 비통한 오류의 희생양이 된 그 사나이를 구출하고, 자기 이름을 밝히고, 의무를 다하여 다시 죄수 장발장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자기의 부활을 성취하고 성고 자기가 벗어난 지옥의 문을 영원히 닫아 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401

 

자수할 결심을 했지. “그럼 그 가엾은 여자는!” 여기에 새로운 위기가 나타났다. 팡틴은 뜻하지 않은 한줄기 햇살과도 같았다. ...“아 이런 나는 지금까지 내 생각만 했구나! 여기에는 한 도시가, 공장들이, 공업이, 노동자들이, 여자들이 아이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먹여 살리고 있다. . 연기 나는 굴뚝 이 있는 곳 이면 어디고 그 불 속에 나무를 넣어 주고 그 냄비 에 고기를 넣어 주는 것 은 나다 . 나는 안락 과 유통과 신용을 만들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없어지면 이 모든 것이 죽는다. 407

 

하지만 장발장은 결국 양심을 택한다. 자신의 삶과 그동안 이룬 모든 선생을 던져 버리고 누명쓴 한 사람을 구한다. 그리고 곧 체포된다. 장발장이 코제트를 데리러 간 줄 알고 있던 팡틴은 자베르에게 잡혀가는 장발장 앞에서 쓰러져 절명한다. 장발장은 죽어가는 팡틴의 귀에 무엇인가 말을 한다.

 

2. 코제트

 

2부에서는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워털루 전쟁의 참상을 그린다. 그리고 여자 수도원에 대한 위고의 견해를 피력한다.

 

1. 워털루

 

전장의 어떤 지점은 다른 어떤 지점보다도 더 많은 병사를 삼킨다. 마치 다소 흡수성이 있는 땅 이 거기에 붓는 물을 다소 빨리 빨아들이듯이 말이다. 거기 에는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병사를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 다. 그것은 뜻밖의 소비다.

 

보뒤앵이 전사하고, 푸아가 부상당하고, 방화와 살육과 학살이 일어나고, 치열한 혼전 속에서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병사들의 피가 시냇물을 이루고, 우물이 송장들로 가득차고, 나소의 연대와 브라운슈바이크의 연대가 전멸하고, 레이유 군단의 사십 개 대대 중 프랑스의 이십개 대대의 태반이 섬멸되고, 이 우고몽의 낡은 집에서만 삼천 명의 군사가 베이고, 찔리고, 목이 잘리고, 총에 맞고 불에 타버렸는데, 이 모든 것의 결과로 오늘날 한 농부가 한 나그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3프랑만 주십쇼. 그러면 워털루 이야기를 해 드립죠!” 1815. 6. 18.

워털루 전투는 나중에 코제트와 결혼하게 될 마리우스의 아버지인 퐁메르시 대령과, 팡틴의 부탁으로 코제트를 맡아 기르게 될 여관업자 테나르디에가 만나게 되는 곳이며, 복잡하게 얽힌 소설 전체의 구성에서 일견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던 인물들을 교차시키고, 다음 사건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쟁에 대해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 장교의 이야기를 통해 저속한 한 단어를 통해 숭고한 저항정신을 낭만주의적으로 표현하며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 영국 장군이 외쳤다. 용감한 프랑스 병사들이여, 항복하라! 이에 캉브론은 이렇게 대답했다. “똥이다!”저 모든 거인들 중에 캉브론이라는 거인이 있었다.워털루 전투에서 이긴 사람은 패주한 나폴레옹도 아니고, 웰링턴도 아니고, 블뤼허도 아니다.워털루 전투에서 이긴 사람은 캉브론이다.

물론 그 말은 고상한 사람들이 입에 담기를 저어하는 말이다. 그러나 위고는 똥이다라는 캉브론의 말을 자기를 죽이는 천둥에 벼락을 치는 것이라고 본다. “파국에 대해 그런 대답을 하고, 운명에 대해 그런 말을 하고 라블레로 레오니다스를 보충하고, 입 밖에 낼수 없는 최고의 한마디 말 속에 그 승리를 요약하고, 진지를 잃고도 역사를 간직하고, 그러한 살육 후에도 적을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니, 그것은 엄청난 일이다.”(374)

위고가 라블레로 레오니다스를 보충한다고 할 때, 숭고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행위와, 모든 상황을 우익살스럽게 만드는 데 천재적이었던 라블레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위고는 캉브론(나폴레옹)이 처한 상황을 놀라우리만큼 재치 있게 포착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을 폐위하기 위해 연합한 유럽의 모든 왕들에 맞서, 최후의 항전에 임하게 된 인물은 한낱 지렁이에 불과하다. 지렁이가 뽑아든 똥이다라는 상스러운 말이었다. 캉브론은 임박한 패배 앞에서 그를 짓눌러 승리를 확인할 적군에게 침을 뱉듯, 그 말을 외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침을 뱉는 등의 이 모든 배설행위는 그것의 성적 의미를 포함하여 상대에게 가장 큰 모욕을 가하는 동시에 모욕을 받은 자에게 있어서는 그 모욕을 되갚아 주는 가장 강력한 행위가 된다. 따라서 캉브론의 말은 단지 비속한 표현이기에 앞서, 패배를 눈앞에 둔 장군이 상대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타격이다.

 

2. 수도원- 가혹한 오류

 

수도원 생활은 구 종교의 편견과 오류로 가득하다. 수도원 특히 여자 수도원에대한 저자의 부정적 판단은 거침없다. 그가 볼 때 수도원은 이미 그 구실을 다했다. 수도원들은 근대 문명 의 초기 교육에는 유익했으나, 문명의 성장을 위해서는 방해가 되었고 그 발전에는 해롭다. 제도로서, 그리고 인간을 위한 교양의 방식으로서 수도원들은 10세기에는 좋았으나 15세기에는 좋지 않았고, 19세기에는 가증스럽다. 수도의 병독은 두 훌륭한 국민들을, 몇 세기 동안 유럽의 광명이었던 이탈리아와 그 광휘였던 스페인을 거의 그 뼈까지 갉아 먹었는데, 현대에 이 두 고명한 국민들이 그 병에서 낫기 시작한 것은 오직 1789년의 건전하고 강건한 위생법 덕분일 뿐이다. 저자가 볼 때 19세기 초의 수도원은, 특히 고대풍의 여자 수도원은, 중세의 가장 음침한 응결체의 하나다.

 

수도원은, 그런 수도원은 무시무시한 것들의 교차점이다. 이른바 가톨릭 수도원은 죽음의 검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 벌거벗은 그리스도 상들이 피흘리며 늘어서 있고... 그 아래 그늘 속에서 너울 쓴 여인들이 울고 있는데, 그녀들은 말총 허리띠와 쇠못 박힌 매로 옆구리에 상처를 입히고, 그 아래 그늘 속에서 너울 쓴 여인들이 울고 있는데, 그녀들은 말총 허리띠와 쇠못 박힌 매로 옆구리에 상처를 입히고, 버드나무 방석으로 가슴을 문지르고, 기도 때문에 무릎 껍질 이 벗어져 있다. 이 여자들은 생각 하고 있는가? 아니다. 뭘 원하고 있는가? 아니다.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다. 살고 있는가? 아니다. 그녀들의 신경은 뼈 가 되고, 그녀들의 뼈는 돌이 되었다. 그녀들의 너울은 짜여진 어둠이다. 너울 아래 그녀들의 숨결은 뭔지 알 수 없는 죽음의 비통한 호흡과 비슷하다. 원귀인 원장이 그들을 신성화하고 . 공포 속에 몰아 넣는다 생생한 순결이 거기에 있다 이러한 것이 스페인의 낡은 수도원 광경이다 . 무시무시한 헌신의 소굴. 동정녀들의 동굴. 잔인한 장소. p 352

 

자자는 숭고한 수도원의 자기 포기와 헌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도 없으면서 신비에도 이루지 못하는 그 어정쩡함을 꼬집는다.

향락화기를 도덕으로 삼는 ... 경박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은둔하는 사람은 누구나 존경할 만해 보인다. 수도원은 자기 포기다. 그릇된 길로 가는 희생도 역시 희생이다. 가혹한 오류를 의무로 착각하는 것, 그덧도 그 나름의 위대성이 있다. ... 그렇게도 엄격하고 그렇게도 음침한 수도원생활.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가 아니니까. 그것은 무덤도 아니다. 왜냐하면 완성이 아니니까. 그것은 이상한 곳, ... 신비의 그 언저리를 살면서, 닫혀있는 사바세계와 열려 있지 않은 천상계 사이에서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광명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 미지의 것을 갈망하고, 움직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고, 무릎을 꿇고 있고, 얼빠져 있고, 어리둥절하고, 몸을 떨고 있고 , 내세의 깊은 숨결에 의해 어떤 시간에는 반쯤 들어 올려져 있는 그 겸허하고 존엄한 영혼들. p 371

 

3. 마리우스

 

순수하지만 어설픈 공화주의자 청년 마리우스의 이야기이다.

엘바섬에서 나폴레옹을 수행했고, 워털루전쟁에 참여했던 마리우스의 아버지인 중대장 퐁메르시는 자신과 정치색을 달리하는 장인으로 인해서 아내가 죽은 후 아들을 빼앗긴다. 할아버지 질노르망은 손주인 마리우스를 아버지를 전혀 만나지 못하게 한 채 왕당파로 자라길 바란다. 아들을 만날 수 없는 아버지 퐁메르시는 아들을 보기 위해서 매주 교회에 가서 먼발치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훔쳐볼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자신을 잊고 사는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는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점점 더 아버지에 대한 미움만 커 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되고 우연히 들렀던 교회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눈물로 그리워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속에서 그는 도서관에서 옛 프랑스신문을 읽으면서 공화국과 제국시대의 역사에 대한 공부한다.

 

과격왕당파 할아버지의 밑에서 들었던 이야기들과는 너무나 다른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할아버지와 의견충돌에 이른 마리우스는 집을 나오게 된다. 그 후 가난과의 전쟁 같은 삶이 이어진다. 이모의 원조조차 돌려 보낸 채 오직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해결해 가면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게 없었더라면, 아버지에게,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에게 자기의 불효한 무관심의 벌을 후일 다르게 받았으리라. 아버지는 갖은 고초를 받았는데 , 저기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건 옳지 않았으리라.' P199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우연히 공원에서 보게 되는 것이 3권이다.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삶. 순수한 사랑. 그러다 그런 마리우스를 눈치챈 장발장이 그 곳을 떠나버리자, 절망한다. 마리우스가 아버지의 유언에 남긴 죽어가는 아버지를 구해주었다는 그 테나르디에가 바로 옆방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테나르디에의 수작에 걸려 돈을 적선하는 이가 우연히 장발장이다. 아버지의 은인을 구할것이냐. 아니면 장발장을 죽이려는 저 불한당인 테나르디에를 신고할것이냐. 이 때 등장하는 경찰은 또 자베르이다.

전쟁이 끝난 폐허 속 시체들 속에서 돈 나가는 유품을 찾다가 어쩌다 그 생명을 구해줬다는 오해를 하는 마리우스의 아버지 그리고 그 마리우스는 자신이 은혜를 갚아야 하는 테나르디에가 집요하게 찾고 있는 코제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3권은 마리우스를 등장시키기위한 장인 듯 하다.

 

저자는 유언이나 유지를 지키는 행위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퐁메르시의 바보같은 유언은 결국 좋지 않은 결과로 마감한다. 마리우스는 끝까지 사기를 치러 온 악마같은 악인 테나르디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욕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많은 돈을 준다. 그 돈은 장발장의 고귀한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저자는 테나르디에가 그 돈으로 노예상인이 되어 더 많은 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한 줄을 첨가한다.

 

 

4.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 생드니거리의 서사시.

 

[레미제라블]은 끝없는 장발장의 고뇌와 성장의 과정이 이어진다. 장발장은 자기 삶의 유일한 행복이었던 코제트에게 접근하는 다른 남자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질투심에 휘말려 코제트에게 다가오는 마리우스를 폄훼한다. 그리고 자기인생 전체에 해한 불공평함에 대한 연민에 빠진다.

저자는 뭐하러 왔는가? 눈치보고, 살펴보고, 시험해보려고 왔다. 행복의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그것을 앗아가려한다.! 암 그렇지 무엇을 찾으러 오는가? 정사랄!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일시적인 사랑을! 일시적인 사랑을!그런데 나는 뭐야!! 난 첨에 가장 비참한 놈이었고, 다음엔 불행한 놈이었고, 사람이 참울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참았고, 평생을 무릎 굻고 지냈고, 사람이 참을 수 없는 무엇이다 . 이젠 늙었고, 가족도 친구도 친척도 없고.....모든 이정표에 내 피를 흘렸고, 남들이 심술궂어도 나는 착하고, 언제나 온후하게 굴었고, 내 죄는 뉘우치고, 악를 당하면 용서하고, 그런데 내가 보상을 받을 때에, 좋아, 잘 됐어, 나는 값을 치렀고, 그것을 획득했는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고, 나는 코제트를 잃을 것이고, 내 인생을, 내 기쁨을, 내 영혼을 잃을 것인가! p 141

 

 

장발장은 이날 까지 어떠한 시련에서도 져 본적이 없다. ... 어떤 극단적인 것도 감수했고, 회복한 불가침의 인권도 희생했고, 자유도 버렸었고 목숨까지도 걸었었다. 언제나 공정했고 순교자처럼 자신을 버렸다. 그런데 완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던 장발장이 왜 이 마리우스를 질투하는가? 저자는 코제트가 장발장이 느낀 유일한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엾은 장발장은 물론 아버지로서 밖에는 코제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의 고독 속에서 그 부성애속에 모든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는 코제트를 딸처럼 사랑하고,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누이처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애인도 아내도 한번 도 가져 그는 모든 잠재적인 감수성들의 알 수 없는 동요를 느꼈다. ... 그는 애인도 아내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으므로, 자연은 어떠한 거절 증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채권자 이므로, 모든 감정들 중에서 가장 우세 한 이 감정도 역시 다른 감정들에 섞여 있었으나, 그에게는 막연하고, 모르는 것이고, 맹목적인 순결성과 전혀 관련이 없이 순결하고, 무의식적이고, 천국같고, 천사같고, 신성했다. 그것은 감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본능이요, 본능이라기 보다는 인력이었다. p 568

 

이를테면 장발장에게 코제트는 순결한 백지에 처음 그려진 단 하나의 감정, 유일한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은 코제트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 갔었다. 코제트 역시 뭔지 모르고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열정적이었다. 코제트의 과감성에 대해 - 청년에게서 진실한 사랑의 첫 징후는 소심이고, 처녀에게는 과감성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보다 더 단순한 것은 없다. 그것은 남녀 양성이 서로 접근하려고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둘은 만나고, 한 번의 입맞춤이 이 두 영혼을 약혼시킨 그 축복받은 거룩한 시간부터 마리우스는 저녁마다 거기에 왔다. 18325월이 지속된 동안 거기에 있었다. 밤마다, 덤불 밑에 모든 정절과 모든 순결로 이루어진 두 남녀가 어둠속에서 사랑에 취했다.

 

 

1. 결말. -낭만주의 언어에 대하여

 

아마도 우리가 보는 번역본이 아닌 원서[빅토르 위고]는 좀더 저속하고 사실적인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치마 밑으로 발복을 내보이는 것조차 음란하게 여기는 시대였으므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위고는 자신이 사용한 결말Argot이란 단어에 대해 논하면서, 낭만주의 문학이 사회의 밑마닥에서 싱싱하게 전져 올려 사용하는 저속한 단어들을 비판하는 고전주의자들에 대해 스스로를 변론한다.

결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이자 동시에 한 집단의 고유언어다. 그것은 민중과 언어라는 두 종류 아래서의 도둑질이다. 34년전 내가 이 말을(한 사형수의 마지막 날에서) 말하는 도둑을 처음 썼을 때 , 놀람과 아우성이 일었다. 끔찍스런 말이다. 형무소 같은 가증스러운 곳에서 하는 말이다. 등등. 이런 불쾌한 특수어를 가지고 작가들은 뭘하려는 건가? 역겹다. 등등. 276

그러나 상처를 검진하고, 깊이, 밑바닥으로 가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변론한다. 오히려 용감한 행위라고. 시궁창을 깊은 시궁창을 뒤지고 진흙 깊은 곳의 더러운 고리 같은 그 농포성 용어을 팔딱거리는 채로, 꺼내 놓는 것이 오히려 연구자의 자세라고 항변한다. 마치 사회가 냉대하는 무고한 자를, 궤양을 외면하는 의사와 같다고 비웃는다.

 

2. 반역과 폭동 즉 혁명과 폭력성에 대하여

 

저자는 혁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다. 17897.14, 17928/10 같은 해방의 날에 더 이상 천민은 없으며 계시 받고 성장한 군중이 맨 먼저 부르짖는 소리는, “도둑놈을 타도하라!”. 진보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상과 절대는 보자기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1848년에도 튀틀리 궁의 재물을 담을 때 넝마주의들이 보초를 섰다고 증언한다. 맨발의 누더기들이 3천만프랑짜리 왕관을 지킨 것이다. 308

 

1832.6.5~6일 폭동에 대하여

 

저자가 말하는 폭동의 요소는 혼란이다. 프랑스 혁명은 숭고와 천박함이 공존한다.

......닥치는 대로 정부를 지나고, 법률을 지나고, 다른 사람들의 번영과 횡포를 지나고. 화가 난 확신. 분격한 열광, 흥분한 분노. 호기심, 변화의 취향. 뜻밖의 일에 대한 갈망, 호각소리를 좋아하는 감정, 막연한 증오, 낙망, 파산을 운명 탓으로 돌리는 허영, 불안, 공상, 야심, 누구든 붕괴에 의해 출구를 바라는 자, 마지막으로, 가장 밑바닥에, 그 불붙기 쉬운 비탄의 하층민 떼가 폭동의 요소요, 가장 위대한 것과 가장 야비한 것, 얼쩡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자들, 부랑배, 무뢰한, 빈궁과 허무의 무명씨들, 맨발의 사람들이 폭동에 참가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뷔장세의 기아에 기인한 폭동을 예로 든다. 그 출발은 진실하고, 비장하고, 정당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폭동이다. 정당하면서도 흉포하고, 강력하면서도 흉포하고, 닥치는대로 후려쳤고, 눈먼 코끼리처럼 짓부수고, 늙은이와 아녀자의 시체를 남겼으며 까닭도 모르고 무고한 자의 피를 흘렸다. 무기를 든 모든 항의는 1789, 1792년의 혁명도 모두 자장 정당한 것조차도 똑같은 혼란으로 시작한다. 권리가 밝혀지기 전에는 다 소란한 폭동이다.

부르주아는 반란의 열매만을 원한다. 폭동을 원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에서 반란과 폭동의 미묘한 차이를 모르면서도, 진정한 해방보다는, 이익의 기회를 노린 부르주아지의 속성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프랑스 시민혁명은 수정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실은 민중이 아닌, (자유주의적)귀족과 부루주아지가 그 주축이었다. 테니스 코트에 모인 삼부회 제 3신분의 부르주아들이 국민의회를 주도하면서 전제적 절대왕정을 대항하여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힘은 미약했다. 그러나 파리 민중의 폭력적 개입으로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일어난 농민혁명은 부르주아들을 당황하게 했고 결국 부르주아지는 회의를 통해 봉건제를 폐지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이 혁명의 진짜 목적은 1791년 제정된 헌법을 보면 드러난다. 농민들의 봉건적 공납을 폐지했으나 유상 폐지였다. 중소 부르주아 미만의 돈이 없는 농민들은 예외였다. 참정권도 직접세를 납부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에게만 부여했다. 몰수된 교회재산도 큰 덩어리로 매각됨으로써 부유한 자영농과 부르주아지의 차지가 되었다. 혁명의 혜택은 입법의회를 주도한 지롱드 파 즉 자유주의적 귀족들과 대 부르주아지 들이었다. 모든 성인 남자만의 보통선거는 지롱드파가 물러난 뒤에야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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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ppycampus.com/doc/15526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