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의 할아버지는 언더우드 박사와 함께 연희전문을 세운 한영교의 손주였다. 그의 조부는 일본이 원자폭탄에 패망하는 것을 보고 그의 아들 한창석을 핵물리학자로 만들기 위한 공부를 시킨다. 하지만 서울공대를 마치고 미국 코넬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핵물리학자 한창석은 의문의 실종이 되고 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어머니마저 어린 한대수를 떠나고 나자 그의 미국생활이 시작됐다. 조부 한영교를 따라 뉴욕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중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녔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종된 아버지를 FBI가 찾아냈다. 17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만났지만 아버지 한창석은 한국말을 완전히 잃어버린 맨해튼의 거물급 인쇄업자로 변해 있었다. 미국인 여자와 결혼해 새 가정까지 꾸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17년 만에 만났는데 You're a b g boy already. Do you smoke? 라고 물으시더니 담배를 주시더군요.” 미국이 어떻게 최면을 했길래 과거를 잃어버리냐?? 또 하필 딱 핵무기경쟁에서 탈락한뒤 나타나느건?? 이휘소박사도 분명이 살해당한게 의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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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물리학자인 아버지 한창석과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박정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한대수는 7살 무렵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아버지가 실종되고, 뒤 이어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신학자인 할아버지와 살았다. 1955년 부산 남일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뒤인 1958년에 미국으로 이민가 뉴욕 할렘에 있는 P.S 125 초등학교을 졸업했다. 196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1964년에 입학한 경남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가 발견되어 1965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롱 아일랜드 A.G Berner 고등학교로 전학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마쳤다. 1966년 뉴햄프셔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귀국한 한대수는 포크 록이라는 장르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무명 가수로 활동하다 1971년 해군 (149기)에 입대해1974년 제대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하던 1974년, 작곡을 해서 다른 가수에게 주었던 두 곡이 매우 유명해진 덕분에 그 해에 첫 음반 《멀고 먼 길》을 녹음했다. 현재 이 음반에 실렸던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등은 음악계에서 한국 포크 록의 새 장을 연 곡들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2집이 나왔지만 체제 전복을 꾀하는 곡들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앨범을 수거하라는 문공부의 명령을 받았다. 살 길이 막막해 지자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9년에 돌아와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 그 뒤 몇 장의 앨범을 냈으며 현재는 사진을 찍거나 공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1970년대 2집 시절 무용가인 김명신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20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자살까지 생각해보았으나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 (Oxana Alferova)를 만나 재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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