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한, 어디에 계십니까.”
1997년 중국의 한 음악 잡지에는 이 같은 제목의 한 음악가를 찾는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중국 최고의 음악사학자로 알려진 중국 중앙음악학원 량마오춘 교수. 그는 1940년대 음악 잡지에 소개된 작곡가 한유한과 그의 음악에 주목했다. 그가 남긴 100여곡이 하나같이 음악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량마오춘 교수가 발표한 글을 계기로 ‘한유한 찾기’가 시작됐다. 급기야 이런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한유한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주인공은 한형석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음악가였다.
KBS 1TV가 제67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10시55분에 선보이는 특집 프로그램 ‘광복군 한형석의 아리랑’은 대중에게 낯선 독립운동가 한형석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다섯 살 때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한형석은 중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예술대학에 진학하면서 독립운동을 결심한 그는 이름을 ‘한유한’으로 바꾸고, 군가와 항일가극을 만들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중 1940년에 만든 창작극 ‘아리랑’은 30여 차례 공연되며 중국군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광복 후인 48년엔 고향인 부산으로 귀향해 아동교육에 매진했다. 한형석은 9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아버지 유품이었던 태극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박지훈 기자
압록강행진곡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진주 우리나라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등잔 밑에 우는 형제가 있다 원수한테 밟힌 꽃 포기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조국에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
위의 노래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라는 노랫말을 불러보기도 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이 노래는 1940년대 광복군의 대표적인 노래로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도탄에 빠진 동포를 구하자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2004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에도 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바로 독립운동가 먼구름 한형석 선생(1910~1996)입니다. 먼구름은 한형석 선생의 호입니다. 부산 출신이며 어렸을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서 소학교, 중학교, 신화예술대학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인 1948년이 되서야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국립극장 초대 극장장과 부산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한형석 선생은 중국 국민군 소속으로 중국 전시간부훈련단인 간사단 음악교관 중교(중령)로 활동하며 37년 중국 최초의 가극인 <리나>를 비롯해 ‘신혁명군가’ ‘출정행진곡’ ‘전사의 노래’ 등 중국어 군가를 작곡했습니다.
1939년부터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예술조장을 맡아 철기 이범석 휘하의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1940년 가극 <아리랑> 초연을 비롯해 1943년 ‘압록강행진곡’ ‘국기가’ 등이 수록된 최초의 독립군가집 <광복군가집> 1·2집 발간 등 100여곡의 군가와 가곡을 남겼습니다.
선생의 가극 <아리랑>은 현제명의 오페라 <춘향전>보다 10년이 앞선 한국 최초의 오페라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승기가’는 광복군의 국기 게양식 때 의식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지난 12월 10일에는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먼구름 한형석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