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 (統攝)
consilience (추론 결과 등의) 부합, 일치.
공생만 유일하게 전체이익 확대 협력을 기반으로 한 경쟁 필요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다윈의 진화론은 큰 틀에서 보면 현대의 시장자본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존해야 한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게 다윈의 진화론이 보여주는 결론이다.
또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따라 자유경쟁을 하다 보면 시장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사회전체에 이익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게 시장자본주의다.
하지만 최근 시장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경쟁과 분열보다는 화합과 협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인간의 본성인 생존 경쟁은 그동안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 공생은 생존의 또다른 방식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2013에서 ‘경쟁(競爭)과 협력(協力)을 넘어 경협(競協)으로’라는 주제발표를 하게 될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협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경쟁과 마찬가지로 협력도 또 다른 형태의 생존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별 생명체들은 크게 경쟁, 포식, 기생, 공생의 관계를 맺고 있다”며 “그 중 경쟁과 포식, 기생은 뺏는 자와 잃는 자의 경계가 분명해 전체 이득이 줄어들거나 변함이 없지만 공생은 유일하게 전체 이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경쟁과 포식이 생존의 방식이라면 공생도 또 다른 형태의 생존 방식이고 어쩌면 더 나은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협력과 자본주의간의 희미했던 연결고리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공생을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다. 공생인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심비우스’ 는 최 교수가 10년 전에 만든 단어다. 그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호모사피언스’는 지나치게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측면이 있다”며 “공생인, 즉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함께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테레사 수녀가 많으면 인간은 멸종한다
하지만 협력이 경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라면 왜 이제서야 부각되기 시작했을까. 이에 대해 그는 “흔히 사람들은 협력에 대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며 “심지어 협력을 강조하면서 희생을 강요해 협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테레사 수녀나 김수환 추기경의 희생정신이 모든 인간의 DNA에 있다면 인간은 멸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연계에서 일방적인 희생은 진화할 수 없다”면서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희생은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이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책에 나오는 일개미를 언급했다. 일개미들은 여왕개미에게 번식의 권리를 모두 넘겨주고 평생 일만 한다. 유전자적 관점에서는 엄청난 희생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컷 개미의 염색체는 암컷의 절반에 불과하다. 암컷은 정자와 난자의 염색체를 절반씩 받아서 만들어지고 수컷은 난자 속에 있는 염색체 만으로 만들어진다. 아버지가 딸에게 모든 유전자를 다 주면서 암컷 일개미는 자매와 훨씬 높은 유전적 유의성을 갖게 된다. 결국 모든 일개미들이 자식을 낳는 것보다 여왕개미를 도와 동생을 더 많이 낳는 것이 자신과 더 가까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유리한 것이다.
최 교수는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흔히 대기업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협력은 공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양쪽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쇼트트랙’이 답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도래하는 통합과 화합의 시대에서 경쟁은 도태돼야 하는 유전인자인 것일까. 그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는 요즘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경협(Cooperti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협은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의 합성어다.
그는 쇼트트랙을 그 예로 들었다. 한국은 ‘겨울의 스포츠의 꽃’인 쇼트트랙의 강국이다. 여기에는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독특한 전략도 승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 초반에는 3~4명의 선수들이 모여 다른 나라 선수들을 견제하면서 경기장을 돈다. 이때는 말그대로 협력이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힘을 비축시킨다. 하지만 결승선을 앞두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금메달을 향한 살벌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리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막판에 발을 내밀어서라도 동료선수보다 먼저 들어오려고 기를 쓴다. 반면 처음부터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경쟁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경기 초반부터 힘을 뺐을 것이고, 확률적으로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딸 확률은 낮아졌을 것이다. 협력을 기반으로 한 경쟁체제가 갖추면서 우리나라는 확고한 쇼트트랙 강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최 교수는 끝으로 올바른 협력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관대한 전문가정신(Gracious professionalism)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관대한 전문가들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경쟁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며 “이런 사람들을 경쟁하는 상대를 존경심과 친절함으로 대하는 특징이 있다”고 덧붙였다.
[용어]‘호모심비우스’(Homo Symbiosis)
공생하는 인간을 뜻한다. 공생을 의미하는 symbiosis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용어다.
산업화 이후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 관계는 피폐해졌으며, 자연 파괴로 인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역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호모심비우스는 이러한 부정적인 관계를 호혜적인 관계로 전환해 모두가 잘 사는 ‘공생’을 추구한다.
호모심비우스란 용어를 창안한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는 동료 인간들은 물론 다른 생물 종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을 말한다”며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기를 열망하는 한편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앞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협력하는 인간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저서 ‘호모심비우스’에서 경쟁이 아닌 공생을 21세기 인간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실제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흐름은 무한경쟁 시대를 지나 공생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공존과 상생으로 제시할 만큼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고 있다.
[프로필]
최재천 교수는 8년 전 국내에 ‘통섭’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cilience(통섭)’을 번역해 한국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통찰’, ‘통섭의 식탁’ 등을 집필·번역하고, TV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며 ‘통섭’을 우리사회에 안착시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로 진화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귀국하기 전까지 그는 하버드대학교 전임강사와 미시건대학교 조교수 및 미시건 명예교우회의 펠로우를 역임했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지냈고 2006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에코과학부를 신설하고 석좌교수와 자연사박물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100편 이상의 논문과 5권의 전문 저서를 출간한 것 외에도 30권 이상의 책을 집필 또는 번역했으며 많은 대중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생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136포럼과 기후변화센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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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욱 기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경쟁과 마찬가지로 공생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생존방식이며 어쩌면 더 나은 방식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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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욱 기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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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욱 기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인터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