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린왕자의 저자인 쌩떽쥐뻬리의 연대기...

하늘벗삼아 2013. 3. 11. 09:22



 

 

 

 

 

어린 왕자의 저자인 쌩떽쥐뻬리의 연대기를,
어린왕자(안응렬 옮김, 삼중당) 책 뒤에 있는 내용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1939년, 39세의 나이로 2차 세계 대전 발발과 동시에 동원되어 2의 33정찰 비행대에 배속됨.

1940년, 40세 이상 비행금지라는 조항에 따라 제대.

1943년, 그는 43세의 나이로 2의 33 비행대 복원 청함.
소속 장군이 만나주지 않자 알제리로 찾아가서 그를 만나,

5회 출격이라는 조건 하에 2의 33 비행대에 복귀를 허락받음.

1944년 7월, 그는 이미 8회 출격을 수행한 뒤였음.

1944년 7월 31일 08시 30분, 쌩떽쥐뻬리는 그르노블-안느시 상공으로 최후의 출격을 함.

13시 20분에 그는 기지로 귀환하지 않음. 휘발유의 여유는 한 시간 여뿐.

14시 30분. 사람들은 그가 이미 비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음.

* 꼬르시카와 대륙간 해상에서 독일 정찰기에게 격추되었으리라고 추측되는 그의 비행기 잔해가 1999년에 대서양에서 인양되었습니다.

어린왕자의 삽화에 칼을 찬 어린왕자의 모습은 조국 프랑스를 위해 참전한 쌩떽쥐뻬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비행대 복귀를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참여 한다는 것이고, 분담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조국 프랑스는 나에게 무엇인가?"



------------------------------------------------------------------

 

 

1900. 6. 29 프랑스 리옹~ 1944. 7. 31 지중해 상공.

프랑스의 비행사·작가.

 

시인의 눈으로 모험과 위험을 바라본 그의 작품들은 조종사이자 전사(戰士)인 작가의 독특한 증언을 담고 있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가난한 학생이었던 그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군복무 동안 조종사 면허를 땄고(1922), 1926년 툴루즈의 라테코에르사(社)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항공우편항로를 개설하는 데 이바지했다. 1930년대에는 시험비행사와 에어프랑스항공회사의 홍보 담당자 및 〈파리 수아르 Paris-Soir〉지 기자로 일했다. 심한 비행기 사고로 평생 불구가 되었지만, 1939년에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다. 프랑스가 함락되자(1940) 미국으로 탈출했고, 1943년 북아프리카 공군에 들어간 후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격추당했다.

 

그는 비행에서 영웅적 행위의 원천과 새로운 문학적 주제를 발견했다. 그의 작품들은 목숨을 내건 위험한 모험이야말로 인간의 소명을 가장 숭고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찬양했다. 첫 작품 〈남방 우편 Courrier-Sud〉(1929)에서 새로운 하늘의 사나이인 우편항공기 조종사 자크 베르니스는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는 리오데오로 사막에서 죽는다. 2번째 소설 〈야간 비행 Vol de nuit〉(1931)은 최초의 정기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그들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맛보는 그 불가사의한 환희를 찬미했다. 그 자신이 비행할 때 겪었던 모험은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1939)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행기를 이용했고, 임무를 완수하려 분투하는 남자들의 동지애 속에서 인간의 유대를 발견했다. 그의 언어는 서정적·감동적이며, 소박한 고귀함을 갖고 있다. 〈전투 조종사 Pilote de Guerre〉(1942)에서는 1940년 5월 승산이 거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찰 임무를 띠고 희생 정신으로 출격했던 일을 회고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동안 프랑스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à un otage〉(1943)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1943)를 썼는데, 〈어린 왕자〉를 통해 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가장 단순한 것이고 진정한 재산은 남에게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상기시켜준다. 인간에 대한 그의 견해는 슬픔과 비관론의 색조를 더해가는데, 이런 경향은 그가 죽은 뒤에 발표된 수상록인 〈성채 Citadelle〉(1948)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문명의 가치를 전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