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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궁

하늘벗삼아 2013. 2. 4. 01:54


엄상궁

조선시대에 중전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하는 수 없이 후궁이 낳은 왕자로 하여금 대통을 잇게 하였다.

광해군의 모 공빈 김씨
... 경종의 모 장희빈
영조의 모 숙빈 최씨
사도세자의 모 영빈 이씨
순조의 모 수빈 박씨 등 후궁이 나은 아들이 왕이 된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그 중 압권은 고종 때 '엄비'다.

일반인들은 생각보다 그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비록 그의 아들이 황제는 못되었지만 황태자는 됐으니 언급해 보자.

그녀는 키는 150 정도에 체중도 상당히 나갔다. 사진을 보면 외관을 대충은 알 수 있겠다. 처음에는 민비의 지밀상궁이었다.

고종과 민비가 동침할 때 그 소리 다 들으며 밖에서 대기하는 처지였다. 불침번이었다.

민비는 후궁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정무는 섭정 흥선대원군이 하니 할 일이 없는 고종은 궁녀들과 놀다가 곧잘 자식을 만들어 냈다.

후궁만 7명이었다. 성깔 있는 민비에 의해 다 쫓겨 났지만 그래도 민비는 불안했다.

못생긴 자신의 지밀상궁 엄상궁을 대전 상궁으로 발령을 냈다.

그 얼굴을 보면...... 민비는 안심했다.

근데, 그런 엄상궁이 고종을 녹였다. 어느 날 승은을 입었다며 치마를 뒤집어 쓰고 나왔다.

민비는 눈이 뒤집혔다. 믿었던 도끼가 발을 내리 친 격이었다. 사가로 내 쫓았다.

10년동안 엄상궁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가에서 쥐죽은 듯이 보내야 했다.

그 사이에, 국제정세가 요동을 쳤다.

청일전쟁(1894)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조선에 친일정부가 꾸려졌다. 고종이건 민비건 실권이 없었다.

일본은 전리품으로 요동반도를 얻었는데, 이게 위보다 음식이 큰 격으로 체했다.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힘을 합쳐 일본에 압력을 넣어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케 했다. '삼국간섭'이다.

러시아의 힘을 확인한 고종과 민비는 급속히 러시아쪽으로 기울었고,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은 고종이 있는 그 궁궐에서 민비를 살해한 것이 을미사변(1895)이다.

고종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궐도 친일파들이 지키고 있어서 말만 임금이었다. 당시 조선의 상비군이 총 4,000명에 불과했다면 믿겠는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찿다가 생각난 사람이 그 예전 엄상궁이었다.

10년만의 환궁이었다. 민비는 없었다. 자신이 안주인이 되었다.

지략도 담력도 좋았다. 자신이 사는 길은 고종이 사는 것이라고 믿은 그녀는 책략을 써서 고종과 세자를 가마에 태워 대궐 뒷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시켰다. '아관파천'이다(1896).

러시아 공사관 사무실 겸 침실에서 1년 동안 고종을 지극히 섬겼는데, 기술도 좋아서 남의 집이고 45세임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했다.

왕자를 생산했는데, 바로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간 있다가 덕수궁으로 환궁한 그녀는 민비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다.

세상을 보는 안목도 높았다. 신학문이 나라를 구한다며 사재를 털어서 양정의숙,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잇달아 설립하였다.

계급은 '황귀비'까지 올라갔다. 황후 바로 밑자리다.

못생겼다고 깔보면 안된다. 특히 40살이 넘으면 '이미지'로 사는 것이지 '이목구비'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아들이자 황태자였던 영친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내고 마음고생으로 1911년에 사망했다.

그녀가 세운 학교들은 이미 100년이 넘었고, 지금도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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