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Vento Di Primavera, 1958)
감독 / 지울리오 델 토레 출연 /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자비네 베스만(Sabine Bethmann) 음악 / 윌리 매트(Willy Mattes)
Curtis / Non ti scordar di me - Ferruccio Tagliavini
테너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1913~995)의 마지막 출연작.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예쁜 독일 여자 회사원으로 이태리를 동경하여 로마에 있는 지사로 근무를 신청하여 루돌프란 바람둥이 상사의 여비서가 된다. 루돌프는 이미 애인이 있으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집을 마련해 주는 등 많은 친절을 베풀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루돌프의 옛 애인이 엘리자베스에게 루돌프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상처받은 엘리자베스는 루돌프를 떠나고 의상을 담당하는 회사에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같이 사는 모델 친구를 통해 탈리아비니의 공연을 보게 된다. 탈리아비니(성악가 알도 모라니(F. Tagliavini))가 부르는 '물망초'에 감동한 나머지 루돌프와의 아팠던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탈리아비니는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 엘리자베스를 본다. 탈리아비니는 부인없이 아들 디노 만 데리고 세계 공연을 다니는 홀아비 테너였다.
탈리아비니의 어린 아들은 엘리자베스를 호텔에서 만나 무척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따라 탈리아비니의 호텔 방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탈리아비니를 만난다. 둘은 가까워졌고, 아들의 도움으로 탈리아비니는 프로포즈를 하고 둘은 결혼한다. 행복한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루돌프가 다시 나타나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흔든다. 엘리자베스는 예전에 자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다시금 열렬히 구애하자 탈리아비니와 아들이 생각나서 번민한다.
하지만 결국 탈리아비니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 탈리아비니는 아들에게 너무도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의 장기였던 '남 몰래 흘리는 눈물' <친구 프리츠 > 중 '벚꽃의 이중창', <아프리카의 여인> 중 '오, 낙원이여'등 많은 아리아와 '물망초'를 비롯한 나폴리 민요를 불렀다.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 물망초(Non ti scordar di me)
http://www.youtube.com/watch?v=Ln8v8Jn507U&feature=player_embedded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 Ferrucio Tagliavini ) 1913-1995

이탈리아의 테너가수. 녹아 내릴 듯한 아름다운 미성과 가성에 가까운 도취적인 음색을 들려 주었던 리리코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는 1913년 이탈리아의 레지오 아밀리아(Reggio Emilia)에서 태어났다. 양친들이 스스로 교육하고자 해서 12세 때에야 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그때부터 목소리가 고와서 "꼬마 카루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전기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부친의 권고로 1933년 파르마 음악원 콩쿠르에서 입상하여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후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파르마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계속하여 1938년에 졸업했는데, 그때 염원이던 전기기사의 면허도 같이 땄다고 한다.그가 가수로서 주목받게된 것은 1939년 봄,피렌체 음악제가 주최한 벨 칸토 콩쿠르에서 영예의 1위를 차지한 데서 비롯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10월에는 그곳 테아트르 콤나레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프역을 불러 "벨 칸토의 정통을 이은 가수"라는 절찬을 받았다. 이후 39년에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1941년에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같은 해에 로마 오페라 극장, 1942년에 라 스칼라 극장으로 입성하는 등 그의 성공은 화려했다.
이 무렵 그가 장기로 했던 레퍼토리는 베르디의 <리골레토>,마스카니의 <친구 후리츠>, 칠레아의 <아를르의 여인>,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람메르모르의 루치아>,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등 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이탈리아의 테너'로서 전선을 다니며 병사들을 위해 노래했으며, 라디오에서도 그의 노래를 방송해 연합군들까지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는 1946년에 남미로 건너가 크게 성공했다. 남미의 승리를 발판으로 1947년에 드디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데뷔, <라 보엠>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기는 승승장구하여 당시의 인기 소프라노 피아 타시나리(Pia Tassinari)와 결혼했다. 1950년대에는 최고의 기량과 명성을 떨쳤고 영화 <물망초>등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칼라스와의 파트너쉽으로 디 스테파노가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다소 밀려나기 시작했다.
델 모나코,베르곤지,코렐리 등도 그의 인기를 뺏어갔지만 무엇보다도 그와 비슷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스테파노의 성공은 그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탈리아비니는 레퍼토리의 폭도 그들보다 좁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탈리아비니는 우아하고 정교한 창법으로 개성있는 좋은 연주를 남겼다.
그의 성량은 큰 편이 아니었으나 팽팽한 포르테와 피아니시모가 대조적이며 맑고 투명한 고음을 들려 주었다. 특히 그는 가성에 가까운 발성을 통해 도취에 가까운 교묘한 감정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스키파의 뒤를 이은 가장 뛰어난 리리코 테너였다. 그는 70년대 이후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했으며,오래 살았지만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83년에 있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고서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음색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담배를 많이 피워대던 애연가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성을 가진 사람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뿌연 담배연기와 그의 음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레나타 테발디에 의하면 탈리아비니는 줄곧 담배를 입에 물고 다녔으며 무대에 나서기 직전에 담배 불을 껐다가 무대에서 나오면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곤 했다고 한다.
이런 흡연 습관은 결국 그의 건강에 큰 해를 끼쳤으며 결국 1995년에 후두암으로 고향 레지오 아밀리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태리 테너 중에서 질리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음성을 지닌 테너였고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인 발성법을 사용했던 탈리아비니가 동시대의 다른 테너들보다 덜 알려진 가장 큰 원인은 오페라 전곡 레코딩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EMI에서는 스테파노,코렐리 위주의 전곡 녹음을 했고,DECCA에서는 델 모나코,베르곤지 위주의 전곡 녹음을 했고,RCA에서는 잔 피어스,리차드 터커를 앞세워 전곡 녹음을 했기에 여기에 소외된 탈리아비니는 기억에 남을 명반으로 후대의 팬들과 가까워질 기회를 잃은 것이다.
레코딩이 적기 때문에 그는 음악잡지에 거의 등장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성악팬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그가 남긴 레코딩은 아주 구하기 힘들다. 메이져 레이블에서 나온 것은 RCA에서 나온 이탈리아 칸초네 집과 EMI에서 나온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있다. 탈리아비니의 노래는 너무도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성악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성에 가까운 달콤한 창법을 구사하기도 하고 어느 새 그와는 대조적인 강한 포르테를 들려줌으로써 듣는 사람을 매혹시킨다.
그는 테너가 부르기에 그렇게 어렵다는 <리골레토>중의 '넘치는 눈물'을 아름다운 미성으로 거침없이 부르며 특히 서두 부분에서 가성에 가까운 독특한 창법으로 여유있게 접근하여 아리아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르타> 중 '꿈과 같이',<베르테르> 중 '누가 나를 잠깨우는가', <람메르모르의 루치아> 중 '내 조상의 무덤이여', <아를르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 등도 비할 바 없이 훌륭하다.
그가 부른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너무도 유명하여 실제 <사랑의 묘약> 공연 중에 이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 후 관객의 너무도 엄청난 반응으로 14번의 앙콜을 받은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아를르의 여인>도 탈리아비니 최고의 명연이라고 하며 실제로 그가 부른 '페데리코의 탄식'을 들어보면 아주 훌륭하다.
파바로티의 자서전에 보면 그가 캄포갈리아니에게 성악을 배우고 있을 무렵 레지오 아밀리아의 살레 아리오스토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리골레토> 중 '넘치는 눈물'을 부르러 무대로 나갔을 때, 곧바로 맨 앞 줄 좌석에 탈리아비니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같은 지역인 레지오 아밀리아 출신의 위대한 테너 탈리아비니는 그의 우상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그 당시 느꼈던 흥분이나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의 가장 유명한 테너 가수의 얼굴을 응시하고 노래를 불렀으니 긴장감으로 좌불안석이었을 정도였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