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지도자; 이승만과 요시다 시게루
두 지도자; 이승만과 요시다 시게루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태어났고, 바다 건너 패전국 일본에는 맥아더 장군이 진주했다. 대한민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으로 시작을 했고,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길전 무. 1878. 9. 22-1967. 10. 20)가 초대 수상을 했다.
두 사람은 영어가 아주 능통했다. 요시다 시게루는 영국 주재 일본 대사를 했다. 두 사람 다 국제정세에 밝고 세계를 내다보는 전략적 감각이 우수했다. 한 사람은 신생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한 사람은 패전국 일본의 초대 수상이다.
치명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한 사람 이승만 대통령은 불행하게 마지막을 끝냈고, 한 사람요시다 시게루는 명예로운 노후를 여유 있게 보내면서 국민들에게서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요시다 시게루는 나이 들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권좌에서 물러날 때를 준비했다. 이승만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비민주적이고 겸손하지 못하고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다가 이를 거부하는 청년을 중심으로 한 국민저항에 부딪쳐서 불행한 인생을 끝냈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이승만 대통령은 후계자를 안 길렀다. 아첨하는 사람들 속에서 대통령은 오래 하려다가 저항을 받고 쫓겨났다.
요시다 시게루는 달랐다.
권좌에 있을 때, 내내 일본 미래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눈여겨보고 정치, 경제, 문화, 공무원 등등 분야에서 능력이 있고 국가관이 분명하고 자기 절제를 할 수 있는 20여 명의 청년을 선택하여 매주 토요일 수상 관저에서 조찬을 같이 했다.
국가를 어떻게 경영하나? 세계를 어떻게 보나? 미국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 소련에 대한 연구와 중국을 공부하면서 다음 지도자를 협조시키고 공부시켰다.
요시다 다음으로 일본수상이 여기서 배출되었다.
미끼, 이께다, 오오히라, 다나까 등이다. 이들에 의해서 일본을 경제대국 선진국으로 이끌어가는 지도력이 발휘되었다. 국익을 위해 협조하는 지도력이 발휘되었다.
그는 도교 출신으로 일본 총리를 하다가 전후 전범으로 처형된 히로타 고키와와 외무성에 함께 입성한 동기였다. 잘 웃고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고 아주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I am sorry란 말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일화에는
한국 6.25 전쟁이 터지자 “이제 일본은 살았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전쟁 물자를 준비하면서 경제가 좋아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후 그가 수상일 때, 맥아더 장군에게 모자라는 식량 원조를 많이 요청했다 .그때마다 많이 지원했다. 또 요청이 있어서 미군이 조사를 해보니, 당시에는 일본에 식량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맥아더 장군이 요시다 시게루 수상에게 “일본 통계가 엉터리라”고 했더니, “일본 통계가 정확하면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지 이렇게 졌겠느냐?”고 답을 했답니다.
2018. 3. 22. 김진홍 목사님 글을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