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神을 건강하게/삶의 흔적

400년 전의 思夫曲

하늘벗삼아 2008. 2. 6. 19:07



<400년 전의 思夫曲>   

 

1998년 4월 안동에서 발견된 412년 전의 한글 편지는 31세로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된 바 있지요. 이 편지는 고성 이씨 이용태의 묘를 이장하던 중 발견되었는데 편지의 내용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소개를 하였으므로 다 보셨겠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감동이 잊혀지지를 않아 옮겨보았습니다.

 제목은 "원이 아버지께"입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죠.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옵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께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건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로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 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다니
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보고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당신은 한갖 그곳에 가 계시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한도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곁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겠습니다.

 

 

 

 

 


1998년 4월 안동 정상동 택지조성을 위해 이곳에 있던 분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 중ㆍ후기를 살았던 고성 이씨 15세 이정명(李明貞, 1504-1565)의 처 일선문씨(一善文氏)가 미이라 상태로 발견되고, 이어 그의 손자인 이응태(1556-1586)씨가 염습 당시의 모습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두 고분에서는 16세기 중·말기의 복식과 장신구가 그대로 발굴이 되어 당시 양반집안의 복식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이응태의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원이 아버지에게'와 눈물과 함께 짰을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신발), 이응태의 형님의 애절한 만시(輓詩) 등의 발굴은 우리 모두에게 412년 전의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원이 아버지에게로"로 시작하는 "사부곡(思夫曲)"은 남편을 여윈 아내의 애절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했습니다. 아내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내용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이응태 부인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그 편지를 남편의 관에 넣는 손끝의 떨림과

어깨의 들썩거림, 숨죽인 흐느낌,

방울방울 맺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눈에 선하다.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는

젊은 청상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정이 뼛속을 스민다.

그녀가 환생하여 금생을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녀는 이응태와 만나 못다한 인연을 풀었을까?  

 



泣訣舍弟 :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
共汝奉旨甘(아우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 지가)
于今三十一(이제 삽십일년이 되었네)
奄然隔重泉(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니)
영原何太疾(어찌 이렇게 급하단 말인가)
拍地之茫茫(땅을 친들 그저 망망하기만 하고)
呼天之默默(하늘에 호소한들 대답이 없구나)
孤然我獨留(외로이 나만 내버려 두고)
汝歸誰與匹(죽어서 뉘와 더불어 함께 할런지
汝留遺後兒(자네가 남기고 간 어린 자식)
我在猶可護(내 살았으니 그래도 보실필 수 있구려)
所望好上仙(바라는 바는 어서 하늘에 오르는 것)
三生何不遠(삼생은 어찌 빠르지 않을쏜가)
亦望勸有助(또 바라는 건 부지런히 도움을 내려주어)
親庭壽萬億(부모님이 만세토록 장수하시는 거라네)
舍兄神亂哭草(형이 정신없이 곡하며 쓴다)

 

 


汝直如竹(그대의 곧음은 대쪽 같았고)
汝潔如紙(그대의 깨끗함은 백짓장 같았네)
將余手物(내가 손수 쓰던 이 부채를)
진汝永去(영원히 떠나는 자네에게 보내네)
舍兄哭(형이 곡을 하며)

 

 



  삼(麻)과 머리카락으로 섞어 짠 짚신(대렴용)입니다.
   신발을 쌌던 한지에 고성 이씨가 "신어보지 못하고 죽었다"
   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한글 편지

  

 조선시대 한글 편지체를 보면 궁녀들이 쓰던 궁체와 백성들, 특히 여인들이 자유롭게 쓰던 민체가 있다. 물론 남녀노소가 일상의 중국식 문자 생활 안에서 어렵게 계층적인 의식으로 이어 온 것이 한글 즉 언문(諺文)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일상의 민중 의식이 규식화된 문자 생활보다 더 값지고 애틋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수많은 한글 자료 중에서 위에 소개하는 이응태(1556~1586) 부인의 편지는 몇 년 전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 된 것으로 내간체의 백미로 꼽을 수 있기에 별도로 위에 소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전인 1586년, 한 여인이 서른살에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로 다정 다감함과 애절한 정이 다시 되살아 나는 듯하여 마음이 애틋하다. 특히 죽은 남편의 시신 옆에는 부인이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 삼은 짚신이 놓여있었으니 그 절절한 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안동=연합뉴스) 문성규 기자 = "안동 아가페상 앞에서 참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세요"

450여 년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애절한 사랑을 편지로 남긴 `원이 엄마''를 형상화한 `안동 아가페상''이 세워졌다.

안동 아가페상 건립추진위원회는 4일 안동시 정상동 대구지검 안동지청 앞 공원에서 `안동 아가페상'' 제막식을 가졌다.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사랑과 남녀 간 참사랑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건립된 이 아가페상은 1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가로 1.5m, 세로 3m 크기의 청동 전신상으로 만들어졌다.

원이 엄마는 지난 98년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내 고성 이씨 이응태(李應台.1556∼1586)의 무덤에서 나온 애절한 편지의 주인공으로, 편지는 고성 이씨 문중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만시(輓詩.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와 미라 등의 유물과 함께 발견됐다.

이 편지에서 원이 엄마는 날로 병환이 악화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신발)를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기원했으나 끝내 어린 아들(원이)과 유복자를 두고 31세란 젊은 나이에 숨진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환을 담았다.

한편 안동 아가페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오는 5일 안동체육관에서 아가페상 제막을 기념해 `제1회 안동아가페 가요페스티벌''을 개최한다.